'남성 호르몬 논란' 음보마, 다이아몬드리그 여자 200m 우승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 높은 음보마, 규제 피해 400m에서 200m 전향
크리스틴 음보마(18·나미비아)가 개인 처음으로 출전한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여자 200m 경기에서 우승했다.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은 음보마가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일 때마다, 육상계에서는 논쟁이 벌어진다.

음보마는 4일(한국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21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여자 200m 경기에서 21초84로 정상에 올랐다.

셰리카 잭슨(자메이카)이 21초95로 2위, 디나 어셔-스미스(영국)가 22초04로 3위를 차지했다. '마리화나 복용 혐의'로 도쿄올림픽 출전이 불발됐던 샤캐리 리처드슨(미국)은 레이스 막판 속도가 뚝 떨어져 22초45로, 4위까지 밀렸다.

곡선 주로까지 4위권으로 달리던 음보마는 직선 주로에 접어들면서 속도를 높였고, 폭발적인 스피드를 과시하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400m가 주 종목이었던 음보마가 200m 경기를 치를 때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음보마는 8월 3일 일본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선에서도 막판 스퍼트로 2위(21초81)에 올랐다.

당시 음보마는 결선에 나선 8명 중 6번째로 곡선 주로를 돌았다.

일레인 톰프슨(자메이카), 개브리엘 토머스(미국), 셸리 앤 프레이저-프라이스(자메이카) 등 세계적인 스프린터가 음보마에 3∼5m 앞선 채 직선 주로에 진입했다. 그러나 결승선 40∼50m를 앞두고 음보마가 무서운 속도로 '역전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초반에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진 톰프슨(21초53)은 제치지 못했지만, 음보마는 토머스(21초87)와 프레이저-프라이스(21초94)를 3위와 4위로 밀어내고 2위를 차지했다.

음보마는 도쿄올림픽 200m에서 예선 22초11, 준결선 21초97, 결선 21초81로 기록을 단축했다.

예선에서 앨리슨 필릭스(미국)가 오랫동안 보유했던 세계 20세 미만 기록 22초11과 타이를 이뤘고, 준결선과 결선에서는 이를 모두 넘어섰다.
음보마는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다이아몬드리그에서도 우승하며 '200m 신흥 강자'의 입지를 굳혔다.

브뤼셀 대회에 도쿄올림픽 챔피언 톰프슨은 참가하지 않았다.

음보마는 경기 뒤 세계육상연맹과의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성인 무대에서 뛴다.

정말 정신없는 시즌이지만, 나는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내년 혹은 내후년에는 100m에도 도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음보마는 최근 세계육상에서 '가장 논쟁적인 선수'로 꼽힌다.

그는 선천적으로 남성 호르몬이 일반 여성보다 3배 이상 높다.

일반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0.12∼1.79n㏖/L(나노몰), 남성의 수치는 7.7∼29.4n㏖/L이다.

세계육상연맹은 "400m, 400m 허들, 800m, 1,500m, 1마일(1.62㎞) 경기에 나서려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5n㏖/L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육상계와 많은 언론이 이를 '세메냐 룰'이라고 불렀다.

공식 명칭은 'DSD(Differences of Sexual Development·성적 발달의 차이) 규정'이다.
캐스터 세메냐(남아프리카공화국)는 세계육상연맹과 2015년부터 '남성 호르몬 수치'를 놓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을 앞두고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세메냐의 손을 들어줬다.

세메냐는 남성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시술을 받지 않고 리우올림픽 여자 800m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세계육상연맹은 이후에도 "세메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라고 주장하며 규정을 유지했고, 세메냐는 다시 CAS에 세계육상연맹을 제소했다.

2019년 5월 CAS는 "세메냐와 남아공육상연맹이 제기한 '여자부 경기에 출전한 선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 제한 규정 철회' 주장을 기각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과는 정반대의 결론이었다.

세메냐는 세계육상연맹과 법정 다툼을 이어가면서도 '제한 종목'이 아닌 200m와 5,000m에 도전해 도쿄올림픽 출전을 노렸다.

그러나 중거리 최강자 세메냐에게도 단거리와 장거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러나 400m가 주 종목이고, 10대인 음보마는 200m에서도 세계 최정상권에 진입했다.

'DSD 명단'에 오른 다른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 중거리 선수들도 주 종목을 200m 혹은 5,000m로 전향하고 있다.

곳곳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중거리에는 영향을 끼치고 단거리와 장거리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라는 불만과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선수의 중거리 출전을 막는 것 자체가 기본권을 억제하는 부적절한 규정"이라는 주장이 터져 나온다.

음보마도 자신을 두고 전문가와 팬들이 논쟁을 벌이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는 규정을 따르고 있다"며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만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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