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원래 약이었다…진토닉은 영국군 말라리아 치료제 [명욱의 호모마시자쿠스]
입력
수정
지면A20
명욱의 호모 마시자쿠스술은 약이 될까. 이 문제를 놓고 술자리에서 늘 논쟁을 벌였다. 한 잔의 술은 약이 된다고도 한다. 상술이란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정답은? 역사에서 해답을 찾아봤다.
동서양 모두 술을 약으로 봤다. ‘동의보감’에 술은 상약 중의 상약,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고 기록돼있다. 궁중에선 음식을 관장하는 수라간이 아니라 의술을 맡는 내의원에서 소주를 담당하기도 했다. 위스키의 어원은 생명의 물. 켈트어로 우스게 바흐(Uisge Beatha)다. 위스키는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치료제로 쓰였다. 1506년 영국은 최초의 위스키 면허를 의사에게 줬다.의약품으로 개발된 것이 술이 되기도 했다. 진(Gin)이 대표적이다. 진은 쥬니퍼베리를 증류주에 침출시켜 다시 증류한 술로 1649년 네덜란드의 실비우스라는 의사가 이뇨 작용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이 술은 이후에 영국 동인도회사 군인의 술이 됐다. 말라리아가 창궐한 인도 식민지에서 병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퀴닌이라는 치료제와 설탕, 라임 등을 넣어 마셨다. 유명한 칵테일 진토닉(Gin&Tonic)이다. 여기서 토닉(Tonic)은 ‘톤을 높여준다’는 의미다. 자양강장제와 비슷하다. 진토닉이라는 칵테일의 시초는 약주였다.
약용 술을 시작으로 증류주에 다양한 약초를 넣어 마시는 문화가 유럽에 성행했다. 바로 리큐르(Liqueur)다. 리큐르의 어원은 잘 녹는다는 뜻의 라틴어 리퀴퍼시르(Liquifacere)다. 술에 뭔가를 녹여 마셨는데 대부분 약초였다.
1970년대 에릭사(Elixir)란 국산 위스키 제품이 있었다. 에릭사는 중세 연금술에 등장한 불로불사의 술이다. 진로가 선보인 에릭사는 주정에 위스키 원액을 소량 넣고, 인공색소로 색을 낸 이른바 유사 위스키였다. 여기에 인삼 뿌리를 통째로 넣어 약용 효과를 강조했다. ‘동양의 신비, 서구의 낭만’이란 광고 슬로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증류주에 약초를 넣어 마시면 무엇보다 저장성이 좋아졌다. 생약초는 금방 상했지만 도수 높은 증류주에 넣으면 절대로 상하지 않았다. 평생 조금씩 마실 수 있었다.이쯤 되면 술은 약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바로 사약이다. 사약에도 술을 탔다. 이유는 단순하다. 물보다 술이 몸에 훨씬 빨리 흡수된다. 술을 백약지장이라고 한 것은 흡수 속도와 효과가 빠르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술이 약이 된 이유는 악용 효과를 빨리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안 좋은 음주는 이온음료와 섞어 마시는 것.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취한다. ‘위험한 폭탄주’다.명욱 <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