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ANALYSIS] 디지털 치료제란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

글 신재용 연세대 의과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는 새로운 약의 분류로 이해하면 쉽다. 관련 단체인 디지털치료제연합(Digital Therapeutic Alliance)은 디지털 치료제를 근거 기반, 임상적 효과가 증명된 소프트웨어를 환자에게 직접 전달해 다양한 질환과 장애에 대한 치료, 관리, 예방을 하는 ‘의학적 개입(medical intervention)’으로 정의한다.

가령 불면증 환자들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를 살펴보자. 다른 신체적 문제가 없는 불면증 환자는 먼저 소프트웨어로 자신의 수면패턴을 스스로 분석할 수 있다. 이어 대한신경정신의학의 권고사항에 기반해 제작한 앱으로 최적의 수면시간과 잠자리에 들 시간, 수면환경 교육을 전달해준다.의료진은 앱이 보내오는 정보로 불면증 환자들의 실생활 개선 정도 데이터를 파악하고 환자에게 맞춤형 상담, 나아가 약물 조절까지 해줄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처방하는 분자약물보다 훨씬 더 큰 현실적인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디지털 치료제의 치료 기전

디지털 치료제의 치료 기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대용량의 생활정보를 처리해 환자의 현황을 파악한다. 이것을 디지털 표현형(digital phenotyping)이라 한다. 똑같은 불면증 환자라 해도 누군가는 스마트폰 중 게임을 하느라, 또 다른 누군가는 유튜브를 보느라 불면을 유도했을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불면 환자라도 그나마 운동을 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질환 관련 디지털 표현형은 무한대에 달한다. 최근 애플이 아동들의 스마트폰 사용 특성에 따른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조기 발견을 목표로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과학적 근거 기반, 질환 관리 및 개선 행태에 대한 교육을 제공한다. 앞서 언급했듯 인터넷 커뮤니티의 체계적이지 않은 개인적 경험담보다 공신력 있는 학회, 의료 전문가, 연구 등에 기반해 디지털 매체(스마트폰 등)로 환자들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따라서 현재 기준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최신의 내용들을 제공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정보에 취약한 환자들에게 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셋째, 인지행동치료, 마음챙김 등 다양한 심리 기반 교육 중재를 제공해 행태화의 비율을 높인다. 2018년 영국에서 나온 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금연 디지털 치료제라도 인지행동치료 기법을 사용해 흡연을 하게 된 이유, 흡연할 때 느끼는 좋은 점, 흡연을 하게 된 스트레스 원인을 파악하고 스트레스 해소 방법 등을 제시한 경우가 단순히 현재 금연 유지 기간 및 금연을 통해 아낀 돈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학원에서 같은 과목을 가르치더라도 명강사가 있는 것처럼 질환 관리와 예방 교육에도 ‘일타’ 디지털 치료제가 나올 수 있다. 또한 적절한 인센티브를 통해 디지털 치료제 사용률을 높인다면 자신의 건강행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왜 필요한가

디지털 치료제의 필요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기 전에 고민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헬스케어 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 나라와 문화마다 다르다.영국처럼 건강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 나라에서는 국가가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서비스를 어느 수준으로 제공할 지 정부가 정하고, 국민에게 제공하면 된다. 서비스 이용자들은 불만이 있으면 개별 병원이나 의사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미국은 의료서비스의 공급자와 민간보험사를 주요 역할자로 볼 수 있다.

민간보험사와 공급자 간 계약을 통해, 민간보험사와 가입자 간 계약을 통해 보험료 수준에 따른 차등적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 슬픈 얘기지만 어느 경우이건 환자, 즉 소비자(consumer)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람이다. 헬스케어의 특징적인 속성인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에이전트(대리인)를 고용하는 걸 보면 헬스케어 시장에서 얼마만큼 소비자가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단순히 계약관계에서 소비자가 갖는 취약성 외에 서비스를 받는 과정에서도 충분하게 본인이 지불하는 재화 수준의 서비스를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중심성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국내 의료 환경을 보자. 환자 A는 국가일반검진에서 당뇨 의심 수치가 나와 동네 의원에서 추가 검사 후 당뇨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당뇨약 2종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다. 이 과정 중 당뇨가 무슨 질환인지, 왜 관리해야 하는지,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어떤 합병증이 생기는지에 대해 자세히 교육받지 못한다. 환자 진료시간이 가장 길다는 미국에서도 환자들의 30%는 자신들이 충분히 상담을 하고 교육받지 못한다고 답한다.

3분 내외 진료를 하는 국내 의료 현실에서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에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교육을 인지행동치료 기반으로 제공한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들이 겪고 있는 질환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유지와 관리를 위한 자기 관리 치료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중심성을 회복하는 의료의 요소라 판단할 수 있다.

효율적 자원관리 측면의 디지털 치료제

디지털 치료제는 제한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최적의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만약 인지행동치료를 대면으로 제공하고 매번 필요할 때 소비자가 의료공급자들을 만나서 제대로 된 교육과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디지털 치료제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의료시장은 바이오 신약, 최첨단 의료기기 등으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따라서 장애인, 어린이, 노인 등 최소한의 대면 서비스 제공이 필요한 인구집단을 제외하고는, 모든 상담 및 교육 서비스를 효율화하는 방향으로 제공된다.

여기서 가치(value)라는 개념으로 의료시장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만약 대면 상담·교육 서비스가 100이라는 수준의 의료를 100만 원으로 제공하고 디지털 치료제를 통해 50이라는 수준의 의료를 5만 원에 제공한다면, 디지털 치료제는 단순 산수에 의해 1만 원당 제공하는 서비스가 10으로, 대면 교육 서비스를 10배 상회하는 수준이 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들에게 표준화되고 최적의 행태 개선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의료제공자는 어떻게 해야소비자를 건강한 행태로 이끌어야 하는지 모른다. 수많은 의학 지식을 기반으로 진단과 치료에는 익숙하지만, 환자들에게 질환을 어떻게 설명하고 관리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교육받지 못했다.

물론 국내에서는 환자들의 교육 수가 상담료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는 한다. 그러나 설명을 친절하게 잘해주고, 질환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준 의사를 만나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해보면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다.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수십 번의 실험과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질환에 대한 긍정적 관리 행태를 체득하고, 부지불식간 실천할 수 있게 교육 프로그램을 구현한다. 다만 이 교육 프로그램을 대면이 아닌, 소프트웨어라는 앱(app)이나 웹(web)으로 제공할 뿐이다.

<저자 소개>

신재용
연세대 의과대를 졸업한 2014년 피부과 전문의, 2017년 예방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디지털 치료기기 가이드라인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보건의료연구기관에서 디지털헬스 부문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