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퇴직연금 ETF 나온다…'수수료' 관건




앞으로 퇴직연금을 은행에서 가입해 운영하고 계신 분들도,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처럼 ETF 투자를 할 수 있게 됩니다.시중은행들이 관련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고 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금융소비자에게 유리한 게 있는지 정치경제부 김보미 기자와 함께 짚어봅니다.

김 기자, 은행 퇴직연금 계좌로 ETF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게 정확히 어떤 개념입니까?

내가 은행에서 퇴직연금계좌를 만들었다면, 앞으로 그 계좌 내에서 ETF 투자도 가능해진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4대 시중은행에서는 연내 퇴직연금 ETF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다음달 정도가 될 겁니다.

은행들은 우선 개인형 IRP 시장에서 먼저 관련 상품들을 내놓고, 이후에 DC형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입니다.참고로 퇴직연금 시장은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는데요.

DB, DC형의 경우에는 나의 직장을 통해서 가입을 하게 되고요.

IRP형은 내가 자율적으로 가입해서 납입을 하는 방식입니다.그리고 여기에서 DC형과 IRP형은 내가 투자 상품을 직접 고르고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를 갖고 있는 금융소비자들만 ETF거래를 할 수 있었고 은행에서는 불가능했죠.

그렇다면 은행 퇴직연금에서 앞으로 ETF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증권사 퇴직연금하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먼저 거래 방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증권사 계좌 내에서는 ETF를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데 반해, 은행권에서는 ‘신탁’ 방식을 활용할 예정입니다.

은행과 신탁 계약을 맺고 고객이 은행에다 주문을 내면 은행이 ETF매매를 대행하는 방식입니다.

대신 고객은 신탁수수료를 은행에 내야 하고요.



한마디로 실시간 거래는 아니라는 얘기네요?



그렇습니다.

대신 은행권에서는 당일 주문건은 당일 내 거래를 완료하도록 해서 불편함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입니다.

장중에 주문을 신청하면 장 마감 전까지 거래를 체결해서 고객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신탁 수수료도 내야 한다고 하는데, 증권사는 따로 수수료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증권사는 사실상 ETF 거래 수수료가 제로 수준입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신탁 수수료가 붙게 되겠죠.

현재 은행권에서 취급하는 일반 ETF 신탁 보수가 대략 평균잔액의 연 0.5~1.0% 수준입니다.

때문에 은행권에서 준비하고 있는 퇴직연금 ETF 신탁 보수도 다소 낮거나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정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실제로 은행권 관계자는 "수수료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정해진 내용이 없다“면서도 ”비교대상이 증권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부분을 감안하지 않겠냐“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김 기자 말을 정리해보면, 사실 증권사보다 그렇게 경쟁력이라고 할만한 건 딱히 없어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왜 이걸 갑자기 시행하는 거죠?



퇴직연금 시장 내 은행권 파이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약 256조원인데요.

은행권 점유율이 여전히 압도적입니다. 절반을 넘어서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요.

은행권이 현상 유지에 그치고 있는 동안 증권업계가 퇴직연금 시장 내 비중을 매년 늘려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퇴직연금 중에서도 비교적 자금 이동이 쉬운 개인형 IRP 시장만 따로 떼어내서 보면 더 두드러지는데요.

이렇다 보니 은행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은 워낙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이대로 놔뒀다가는 추후 증권업계에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라면 증권사처럼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도록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신탁형태로 한다는 거죠?



물론 은행도 그런 시도를 해왔습니다.

다만 금융당국이 지난 7월 “실시간 매매 중개는 증권사의 고유 업무영역”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실시간 거래는 불가능하게 됐고, 대안으로 신탁 방식을 통한 ETF 거래를 택한 겁니다.



실시간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거네요.

그렇다면 은행이 지금 이런 서비스를 내놓는 것은 어떻게든 버텨보기 위한 몸부림같은 걸로 봐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같은 은행권의 시도는요.

기존 은행 퇴직연금 계좌를 사용하고 있는 금융소비자들의 상품 선택 폭이 넓어진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은행권 IRP 계좌 내에서 TDF(타겟데이트펀드)와 같은 일종의 일임형 상품에 투자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가 직접 연금을 굴리려는 분들도 분명 있거든요.

그런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거죠.

또 퇴직연금 시장 전체로 봤을 때 한 단계 질적으로 성숙해졌다고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금융소비자들이 연금 투자, 운용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은행권도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까요.
김보미기자 bm0626@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