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 미등기 임원 재직 176건…"권한 향유하며 책임 회피"(종합)

미등기 임원 CJ 이재현 124억원·하이트진로 박문덕 54억원 보수 받아
효성 등 58개사, 전자투표제 도입 안해…소액주주 권리 '뒷전'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들이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경우가 총 176건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임원으로서 권한은 누리면서 법적 책임 등을 비켜나갈 수 있다며 책임경영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과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은 계열사의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각각 124억원과 54억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 총수 일가 미등기임원 재직 176건…책임 경영 우려
공정위는 지난해 5월 1일부터 올해 4월 30일까지의 62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소속 2천218개사(상장사 274개사) 현황을 분석해 2일 '2021년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했다. 총수가 있는 54개 기업집단의 2천100개 계열사 중 총수 일가가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경우는 총 176건(임원이 여러 회사에 재직하는 경우 중복 집계)이었다.

그중 96건(54.5%)이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 대상이거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시하는 사익편취 '규제 사각지대' 회사에 재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 본인은 1인당 평균 2.6개사의 미등기임원을 맡았다. 특히 중흥건설은 총수와 총수 2세가 각각 11개 계열사에 미등기 임원으로 겸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진(6개), CJ(5개), 하이트진로(5개) 등 집단에서도 총수 1명이 5개 이상의 계열사에 재직했다.

성경제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장은 "총수 일가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 재직하면서 권한과 이로 인한 이익은 향유하면서도 그에 수반되는 책임은 회피하려는 사실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미등기임원의 경우 5억원 이상을 보수로 받는 자 중 상위 5명만 공개되는데, CJ 이재현 회장이 계열사에서 123억7천9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문덕 회장은 하이트진로에서 53억8천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 SM 총수, 이사 직함만 12개…하림 7개·롯데 5개 겸직
총수 일가 1명 이상을 이사로 등재한 회사의 비율은 15.2%(319개사)였다.

213개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 중 120개사(56.3%), 359개 규제 사각지대 회사 중 75개사(20.9%)는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됐다.

비규제대상 회사에서의 총수 일가 이사 등재 비율(8.1%)보다 현저히 높다.

총수 본인은 1인당 평균 3개의 이사직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SM(12개), 하림(7개), 롯데(5개), 영풍(5개), 아모레퍼시픽(5개) 등은 총수 1명이 5개 이상의 계열사에 이사로 이름을 올리면서 책임경영을 다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보수로 89억1천700만원을 받았다.

하림 김홍국 회장은 23억700만원,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은 22억3천100만원을 각각 수령했다.

한편, 총수 일가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52개에 이사로 등재된 비율은 전년 62.5%에서 69.2%로 증가했다.

성 과장은 "총수 일가가 공익법인을 사회적 공헌 활동보다 편법적 지배력 유지·확대에 사용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달 말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 계열사 보유주식에 대한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가 일정 범위 내에서 제한되는데, 공정위는 내년에 실태조사를 통해 준수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
◇ 전자투표제 등 도입 상장사 216개…58개사는 도입 안 해
상장된 대기업 계열사 274개 중 216개(78.8%)는 집중·서면·전자투표제 중 최소 하나의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제도 도입 회사가 147개사에서 69개사(46.9%) 증가했다.

집중·서면·전자투표제는 소수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거나 쉽게 해서 소수주주에 의한 지배주주 견제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특히 전자투표제는 75.2%의 상장사가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투표제를 통한 소수주주의 의결권 행사 주식 수는 작년 6천700만주에서 1억2천700만주로 거의 2배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주주총회가 늘고 개인 주식투자자 비율도 확대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여전히 집중·서면·전자투표제 중 단 하나도 도입하지 않은 회사가 58개사에 달했다.

이 회사 중 절반이 넘는 30개사 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거나, 규제 사각지대 회사다. 효성, KCC글라스, 태광산업, AK홀딩스, 세아홀딩스, TY홀딩스, HDC 등 10개사가 규제 대상이며 한진칼, 진에어, 오리콤, 넷마블, 동원F&B, 한라홀딩스, 금호석유화학, 하이트진로홀딩스 등 20개사가 사각지대 회사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