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불상·불화 남기고 잊혀간 '조선의 승려 장인' 재발견(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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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국보·보물 15건 등 자료 145건 공개
1684년作 용문사 목각설법상 첫 나들이…"불교미술 아름다움 느끼길"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추진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이 유교를 중시한 것은 분명하지만, 왕조가 유지된 500여 년간 시종일관 불교를 배격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유물이 약 10m 높이의 거대한 불화 '괘불'(掛佛)이다.
야외에서 법회를 치를 때 사용하는 괘불은 조선시대 후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괘불 중 국보가 7점이나 된다.
괘불은 조선시대에 출현한 '승려 장인'들이 대부분 제작했다.
'화승'(畵僧)이라고 하는 승려 화가뿐만 아니라 '조각승'이라고 일컫는 승려 조각가는 예술성이 뛰어난 불화와 불상을 곳곳에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르네상스'를 연 승려 장인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조명하는 대규모 조선 불교미술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을 7일부터 내년 3월 6일까지 연다.
유수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6일 "승려 장인은 전문적 제작기술을 지닌 출가승으로, 신앙의 대상인 부처를 형상화하는 화승과 조각승이 중심이 됐다"며 "그들은 함께 작품을 조성했고, 사제 관계를 맺어 기술을 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 후기 조각승은 1천여 명이고, 화승은 2천400여 명이라고 한다"며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에 관여한 승려 장인은 모두 366명"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관(官) 주도로 불교미술이 명맥을 이어갔다면, 임진왜란 이후에는 승려 화가들이 불교미술의 꽃을 피웠다.
이들은 프로젝트 형태로 불상과 불화를 제작했고, 기존 양식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이애령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조선의 승려 장인은 신기하게도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며 "불사(佛事)가 생기면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지향한 점도 특이하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불교라는 종교와 관계없이 승려 장인의 행위는 독특한 면이 있다"며 "많은 명품 불상과 불화를 만들었지만 잊힌 사람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재발견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출품작은 국보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와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해 보물 13건, 시도유형문화재 5건 등 145건이다.
그중에는 15개 사찰에서 온 유물 54건도 있다.
불교에서 문화재는 성보(聖寶), 즉 성스러운 보물이어서 사찰 밖으로 나들이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번 전시를 위해 조각승 단응이 불상과 불화를 결합해 만든 보물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1684년 제작 이후 337년 만에 최초로 산문(山門)을 나섰다.
송광사 화엄경변상도와 '붓의 신선'으로 불린 화승 의겸이 1729년 그린 보물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관람객과 만난다.
단응과 의겸,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신겸은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완성한 주인공들이다. 전시는 크게 4부로 나뉜다.
구성은 불교미술이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고, 과도한 종교색이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유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곳곳에 작품의 이해를 돕는 영상도 배치했다.
1∼2부에서는 일반 장인과 차별화되는 승려 장인의 성격을 소개하고, 화승과 조각승의 공방과 작업을 설명한다.
1775년에 완성된 보물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4점은 밑그림인 초본과 나란히 전시해 스케치가 불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부장은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초본에 대해 "조선시대 초상화에는 희로애락이 드러나지 않지만, 이 작품에는 감정이 고스란히 나타난다"며 "균형감과 유기적인 배치가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3부에서는 처음 서울에서 전시되는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해인사 영산회상도를 비롯해 '마곡사 영산전 목조석가여래좌상', '고운사 사십이수관음보살도' 등 한자리에서 감상하기 힘든 다양한 불상과 불화를 선보인다.
단응을 포함해 조각승 9명이 조성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독립된 공간에 놓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물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지 않아도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 4부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주제로 삼아 전시 공간을 조선 후기 불상·보살상 7점과 설치미술가 빠키의 작품 '승려 장인 새로운 길을 걷다'로 꾸몄다.
전시장 출구에는 승려의 뒷모습을 표현한 김홍도의 작은 그림이 걸렸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불사에 정진한 승려 화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유 연구사는 "사람들이 불교미술이라고 하면 고려만 생각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승려 장인이 활발하게 활동했다"며 "오랫동안 수행한 결과로 탄생한 남다른 기교의 작품을 많은 사람이 찾아와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1684년作 용문사 목각설법상 첫 나들이…"불교미술 아름다움 느끼길"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추진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이 유교를 중시한 것은 분명하지만, 왕조가 유지된 500여 년간 시종일관 불교를 배격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유물이 약 10m 높이의 거대한 불화 '괘불'(掛佛)이다.
야외에서 법회를 치를 때 사용하는 괘불은 조선시대 후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존하는 괘불 중 국보가 7점이나 된다.
괘불은 조선시대에 출현한 '승려 장인'들이 대부분 제작했다.
'화승'(畵僧)이라고 하는 승려 화가뿐만 아니라 '조각승'이라고 일컫는 승려 조각가는 예술성이 뛰어난 불화와 불상을 곳곳에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르네상스'를 연 승려 장인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조명하는 대규모 조선 불교미술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을 7일부터 내년 3월 6일까지 연다.
유수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6일 "승려 장인은 전문적 제작기술을 지닌 출가승으로, 신앙의 대상인 부처를 형상화하는 화승과 조각승이 중심이 됐다"며 "그들은 함께 작품을 조성했고, 사제 관계를 맺어 기술을 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 후기 조각승은 1천여 명이고, 화승은 2천400여 명이라고 한다"며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에 관여한 승려 장인은 모두 366명"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관(官) 주도로 불교미술이 명맥을 이어갔다면, 임진왜란 이후에는 승려 화가들이 불교미술의 꽃을 피웠다.
이들은 프로젝트 형태로 불상과 불화를 제작했고, 기존 양식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이애령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조선의 승려 장인은 신기하게도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며 "불사(佛事)가 생기면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지향한 점도 특이하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불교라는 종교와 관계없이 승려 장인의 행위는 독특한 면이 있다"며 "많은 명품 불상과 불화를 만들었지만 잊힌 사람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재발견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출품작은 국보 '순천 송광사 화엄경변상도'와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해 보물 13건, 시도유형문화재 5건 등 145건이다.
그중에는 15개 사찰에서 온 유물 54건도 있다.
불교에서 문화재는 성보(聖寶), 즉 성스러운 보물이어서 사찰 밖으로 나들이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번 전시를 위해 조각승 단응이 불상과 불화를 결합해 만든 보물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1684년 제작 이후 337년 만에 최초로 산문(山門)을 나섰다.
송광사 화엄경변상도와 '붓의 신선'으로 불린 화승 의겸이 1729년 그린 보물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관람객과 만난다.
단응과 의겸,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신겸은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완성한 주인공들이다. 전시는 크게 4부로 나뉜다.
구성은 불교미술이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고, 과도한 종교색이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유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곳곳에 작품의 이해를 돕는 영상도 배치했다.
1∼2부에서는 일반 장인과 차별화되는 승려 장인의 성격을 소개하고, 화승과 조각승의 공방과 작업을 설명한다.
1775년에 완성된 보물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4점은 밑그림인 초본과 나란히 전시해 스케치가 불화로 나아가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부장은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초본에 대해 "조선시대 초상화에는 희로애락이 드러나지 않지만, 이 작품에는 감정이 고스란히 나타난다"며 "균형감과 유기적인 배치가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3부에서는 처음 서울에서 전시되는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해인사 영산회상도를 비롯해 '마곡사 영산전 목조석가여래좌상', '고운사 사십이수관음보살도' 등 한자리에서 감상하기 힘든 다양한 불상과 불화를 선보인다.
단응을 포함해 조각승 9명이 조성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독립된 공간에 놓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물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지 않아도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 4부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주제로 삼아 전시 공간을 조선 후기 불상·보살상 7점과 설치미술가 빠키의 작품 '승려 장인 새로운 길을 걷다'로 꾸몄다.
전시장 출구에는 승려의 뒷모습을 표현한 김홍도의 작은 그림이 걸렸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불사에 정진한 승려 화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유 연구사는 "사람들이 불교미술이라고 하면 고려만 생각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승려 장인이 활발하게 활동했다"며 "오랫동안 수행한 결과로 탄생한 남다른 기교의 작품을 많은 사람이 찾아와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