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이민 100년] ④ 먼나라서 찾은 내 뿌리…한국과 가까워진 젊은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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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5∼6세, 한국 방문 등 계기로 한국인 정체성 재확인
한글 배우고 한국문화 즐겨…"자식에게도 한국 가르칠 것" "제 이름은 장미입니다. 열두 살입니다.
"
또박또박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소녀의 이름은 장미 페냐 하. 쿠바 카르데나스에 사는 한인 5세다.
조상의 모국어로 이름을 지어준 부모 덕분에 장미는 자신이 쿠바 외에 또 다른 뿌리가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게 됐다. 아직 가 보지 못한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마을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도 배웠다.
유튜브로 보고 익힌 부채춤 영상을 보여주며 쑥스럽게 웃는 장미는 "아직 장래희망을 찾고 있는 중인데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쿠바 한인후손회를 설립한 임은조(1926 ~ 2006) 씨는 2002년 보고서에서 "외모와 유전적 특징마저 현지인화된 4∼5세대 후손들은 한·쿠바간 단절상태가 지속되는 한 한국을 고국이 아닌 머나먼 이방인의 나라로 여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과 쿠바는 여전히 미수교 상태지만, 다행히도 임씨의 우려는 현실화하지 않은 듯하다. 한인 정체성 유지를 위해 애썼던 임씨 등의 노력으로 후손들은 고국과의 끈을 놓지 않았고, 우리 정부도 먼 쿠바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힘쓰고 민족혼을 지켰던 한인 후손들에 뒤늦게나마 눈을 돌렸다.
인터넷의 발달과 한국 문화의 확산 등은 한국과 쿠바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젊은 후손 대부분은 비록 외모에선 한국인의 뿌리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정서적으로는 조국과 더 가까워진 셈이다.
아바나에 사는 한인 5세 정보공학자 라우라 소톨롱고 박(31)은 대학 졸업 직후인 2013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다른 쿠바 한인 후손 9명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경주, 전주, 비무장지대(DMZ) 등을 찾아 한국의 어제와 오늘, 다양한 한국문화를 체험했다.
라우라는 "어릴 때부터 '박'이라는 성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한국 얘기를 자주 들려주신 할아버지 덕분에 내 뿌리가 어디인지를 인식하며 자랐다"며 "한국에 다녀온 후 내 뿌리가 더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리랑'을 비롯해 한국서 보고 배운 것을 모두 내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겠다"며 "앞으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면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누엘 무니스 박(27)은 몇 년 전 한국에 초청을 받아 한식요리 수업을 받았다.
현재 아바나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마누엘은 "한국에 다녀온 뒤 더 한국인처럼 느껴졌다"며 지금은 쿠바 요리를 만들고 있지만 언젠가 한국에서나 쿠바에서나 한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 다녀온 후손들이나 아직 기회를 갖지 못한 후손들 모두 방탄소년단(BTS)이나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문화를 쿠바 또래들과 함께 즐긴다고 했다.
한인 후손들은 지역별 한국 문화 동호회에서도 활동한다.
'쿠바의 한국인들' 저자인 마르타 임 김(임은희·83)은 "한인 1, 2세 이후로 옅어지던 쿠바 한인 후손들의 한국인 정체성이 1995년 (오빠) 헤로니모의 첫 한국 방문 이후 다시 짙어졌다"며 "한국 방문 기회가 늘어나면서 후손들이 점점 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한계는 있다.
쿠바엔 한국어를 가르쳐줄 '원어민' 교사조차 없다.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던 장미도 카르데나스에서 한글 수업을 하던 재미 한인 선교사가 돌아간 이후엔 실력이 더 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안토니오 김 함 쿠바 한인후손회장은 "젊은 후손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역할"이라고 더 활발한 활동을 다짐하면서, 아울러 후손들이 모국을 방문할 기회도 많이 생기길 희망했다. /연합뉴스
한글 배우고 한국문화 즐겨…"자식에게도 한국 가르칠 것" "제 이름은 장미입니다. 열두 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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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박또박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소녀의 이름은 장미 페냐 하. 쿠바 카르데나스에 사는 한인 5세다.
조상의 모국어로 이름을 지어준 부모 덕분에 장미는 자신이 쿠바 외에 또 다른 뿌리가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게 됐다. 아직 가 보지 못한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마을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도 배웠다.
유튜브로 보고 익힌 부채춤 영상을 보여주며 쑥스럽게 웃는 장미는 "아직 장래희망을 찾고 있는 중인데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쿠바 한인후손회를 설립한 임은조(1926 ~ 2006) 씨는 2002년 보고서에서 "외모와 유전적 특징마저 현지인화된 4∼5세대 후손들은 한·쿠바간 단절상태가 지속되는 한 한국을 고국이 아닌 머나먼 이방인의 나라로 여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과 쿠바는 여전히 미수교 상태지만, 다행히도 임씨의 우려는 현실화하지 않은 듯하다. 한인 정체성 유지를 위해 애썼던 임씨 등의 노력으로 후손들은 고국과의 끈을 놓지 않았고, 우리 정부도 먼 쿠바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힘쓰고 민족혼을 지켰던 한인 후손들에 뒤늦게나마 눈을 돌렸다.
인터넷의 발달과 한국 문화의 확산 등은 한국과 쿠바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젊은 후손 대부분은 비록 외모에선 한국인의 뿌리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지만 정서적으로는 조국과 더 가까워진 셈이다.
아바나에 사는 한인 5세 정보공학자 라우라 소톨롱고 박(31)은 대학 졸업 직후인 2013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다른 쿠바 한인 후손 9명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경주, 전주, 비무장지대(DMZ) 등을 찾아 한국의 어제와 오늘, 다양한 한국문화를 체험했다.
라우라는 "어릴 때부터 '박'이라는 성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한국 얘기를 자주 들려주신 할아버지 덕분에 내 뿌리가 어디인지를 인식하며 자랐다"며 "한국에 다녀온 후 내 뿌리가 더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리랑'을 비롯해 한국서 보고 배운 것을 모두 내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겠다"며 "앞으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면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누엘 무니스 박(27)은 몇 년 전 한국에 초청을 받아 한식요리 수업을 받았다.
현재 아바나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마누엘은 "한국에 다녀온 뒤 더 한국인처럼 느껴졌다"며 지금은 쿠바 요리를 만들고 있지만 언젠가 한국에서나 쿠바에서나 한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 다녀온 후손들이나 아직 기회를 갖지 못한 후손들 모두 방탄소년단(BTS)이나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문화를 쿠바 또래들과 함께 즐긴다고 했다.
한인 후손들은 지역별 한국 문화 동호회에서도 활동한다.
'쿠바의 한국인들' 저자인 마르타 임 김(임은희·83)은 "한인 1, 2세 이후로 옅어지던 쿠바 한인 후손들의 한국인 정체성이 1995년 (오빠) 헤로니모의 첫 한국 방문 이후 다시 짙어졌다"며 "한국 방문 기회가 늘어나면서 후손들이 점점 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한계는 있다.
쿠바엔 한국어를 가르쳐줄 '원어민' 교사조차 없다.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던 장미도 카르데나스에서 한글 수업을 하던 재미 한인 선교사가 돌아간 이후엔 실력이 더 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안토니오 김 함 쿠바 한인후손회장은 "젊은 후손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역할"이라고 더 활발한 활동을 다짐하면서, 아울러 후손들이 모국을 방문할 기회도 많이 생기길 희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