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떠나도…"자식 명예 되찾기 전에는 독재 안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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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이한열 유족 "단죄 못해 억장 무너져, 국가장 말이 되나"
팔순 노구 끌고 '민주유공자법' 요구 농성…"불순분자 오명 씻어야" "연희동 집 대문 앞에는 수도 없이 갔지. '전두환 나와라' 하고 고함을 지르면 경찰들이 와서 방패로 밀어. 그래도 걔들한테 '너도 나처럼 당해봐'라는 말은 못 했어. 그런 일은 누구도 당하면 안 되는 거야."
2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농성장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81)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전두환 있는 곳은 안 가본 곳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배씨는 전두환씨가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 은거하던 강원 인제 백담사, 사면을 받고 당당히 걸어 나온 안양교도소까지 찾아가 '죗값을 치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달 23일 광주 집에서 TV를 보다가 전씨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는 전두환이가 죽으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오히려 속이 상해. 입 딱 다물고 있다가 죽으니까 오히려 울분이 터지더라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한 달 사이에 나란히 세상을 떠났지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유족들은 끝내 책임을 묻지 못했다며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1987년 1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해 사망한 고(故)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63)씨는 "억장이 무너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전두환은 군사 반란 수괴다.
사형을 당해 마땅한 자가 사면받고 떳떳이 살다가 죽었다"며 "누구 하나 그자를 용서한 사람이 없다. 제대로 죗값을 치른 다음에 죽었어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씨 사망 뒤 불거진 호칭 논란과 노씨가 받은 국가장 예우도 상처가 됐다.
배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면 그자를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가 있느냐"며 "열불이 난다"고 외치고는 가슴을 쳤다.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우리 자식들은 아직도 비방에 시달린다.
그런데 반란수괴 노태우한테는 국가장을 치러주고 대선후보까지 가서 조문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족들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2000년대 초부터 논의됐으나 번번이 좌절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국회 앞에서 80일째 농성 중이다.
장남수(79) 유가협 회장은 "이제 우리 자식들이 불순분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로 인정받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남긴 유언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이었다고 한다.
큰아들인 종부씨는 "아버지는 법을 못 만든 게 한이 돼 마지막까지 종철이에게 미안해하셨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종철이한테 나라가 해준 것이라고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 하나가 전부다.
관련자가 대체 뭔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법을 만들자고 하면 보수언론은 특혜 얘기를 한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정치인들도 '특혜받으려고 한 것 아니다'라고 얘기하더라"면서 "살아서 국회의원하고, 이미 특혜를 누린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 초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 등 범여권 의원 73명이 민주화 유공자를 지원하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란 끝에 철회된 바 있다.
팔순을 넘긴 배씨는 자식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봐야 편하게 눈을 감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배씨는 "얼마 전 꿈에 한열이 묘지가 보이는데 눈이 한가득 덮여있고 고드름이 얼어있는 거야. 일어나자마자 망월동에 전화했더니 한열이 묘에 눈이 진짜 왔다고 하더라고. 걔가 그런 식으로 한을 얘기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우리는 종철이, 한열이, 자식들 떳떳하게 인정받는 세상 만들려고 여태 산 거야. 내 자식 명예가 되찾아지지 않으면 전두환이 노태우가 죽어도 독재는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팔순 노구 끌고 '민주유공자법' 요구 농성…"불순분자 오명 씻어야" "연희동 집 대문 앞에는 수도 없이 갔지. '전두환 나와라' 하고 고함을 지르면 경찰들이 와서 방패로 밀어. 그래도 걔들한테 '너도 나처럼 당해봐'라는 말은 못 했어. 그런 일은 누구도 당하면 안 되는 거야."
2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농성장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81)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전두환 있는 곳은 안 가본 곳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배씨는 전두환씨가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 은거하던 강원 인제 백담사, 사면을 받고 당당히 걸어 나온 안양교도소까지 찾아가 '죗값을 치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달 23일 광주 집에서 TV를 보다가 전씨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는 전두환이가 죽으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오히려 속이 상해. 입 딱 다물고 있다가 죽으니까 오히려 울분이 터지더라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한 달 사이에 나란히 세상을 떠났지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유족들은 끝내 책임을 묻지 못했다며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1987년 1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해 사망한 고(故)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63)씨는 "억장이 무너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전두환은 군사 반란 수괴다.
사형을 당해 마땅한 자가 사면받고 떳떳이 살다가 죽었다"며 "누구 하나 그자를 용서한 사람이 없다. 제대로 죗값을 치른 다음에 죽었어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씨 사망 뒤 불거진 호칭 논란과 노씨가 받은 국가장 예우도 상처가 됐다.
배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면 그자를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가 있느냐"며 "열불이 난다"고 외치고는 가슴을 쳤다.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우리 자식들은 아직도 비방에 시달린다.
그런데 반란수괴 노태우한테는 국가장을 치러주고 대선후보까지 가서 조문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족들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2000년대 초부터 논의됐으나 번번이 좌절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국회 앞에서 80일째 농성 중이다.
장남수(79) 유가협 회장은 "이제 우리 자식들이 불순분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로 인정받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남긴 유언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이었다고 한다.
큰아들인 종부씨는 "아버지는 법을 못 만든 게 한이 돼 마지막까지 종철이에게 미안해하셨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종철이한테 나라가 해준 것이라고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 하나가 전부다.
관련자가 대체 뭔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법을 만들자고 하면 보수언론은 특혜 얘기를 한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정치인들도 '특혜받으려고 한 것 아니다'라고 얘기하더라"면서 "살아서 국회의원하고, 이미 특혜를 누린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 초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 등 범여권 의원 73명이 민주화 유공자를 지원하는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란 끝에 철회된 바 있다.
팔순을 넘긴 배씨는 자식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봐야 편하게 눈을 감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배씨는 "얼마 전 꿈에 한열이 묘지가 보이는데 눈이 한가득 덮여있고 고드름이 얼어있는 거야. 일어나자마자 망월동에 전화했더니 한열이 묘에 눈이 진짜 왔다고 하더라고. 걔가 그런 식으로 한을 얘기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우리는 종철이, 한열이, 자식들 떳떳하게 인정받는 세상 만들려고 여태 산 거야. 내 자식 명예가 되찾아지지 않으면 전두환이 노태우가 죽어도 독재는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