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임금 인플레]④ 美·유럽도 '임금 인플레'…"우리도 장기 대책 세워야"

코로나 장기화·외국인 부족에 英 '기름대란' 등 벌어져
전 세계 곳곳서 '인력 부족→임금 급등→물가 상승' 현상
"임금 인플레는 뉴노멀…'숙련인력 고용허가제 완화' 등 대책 세워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인력 부족과 임금 급등, 물가 상승의 악순환을 불러왔다.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올해도 노동력의 국가 간 이동 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와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이른바 3D 업종 기피 등으로 외국인 임금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외국인 임금 인플레이션을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로 받아들이고, 이에 기반한 장기적, 구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한국 풀뿌리 제조현장의 주춧돌로 자리 잡은 숙련 외국인 기술인력 등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활용할 경우 저출산과 숙련인력 부족 등의 문제를 극복할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 제기됐다.
◇ '구인난→임금 급등→물가 상승' 전 세계가 난리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각국의 국경이 봉쇄되면서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인력의 고용이 어려워지자 물류업, 서비스업, 요식업 등 경제 곳곳에서 '인력의 동맥경화' 현상이 벌어지는 국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코로나19 확산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까지 겹치면서 외국인 트럭 운전사들이 극심하게 부족해지는 상황이 빚어졌다. 트럭 운전사 부족으로 인해 슈퍼마켓 진열대가 텅 비고, 식당에선 주요 메뉴가 빠지는 일이 잇따랐다.

휘발유 등의 수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주유소에 기름이 동나고 사재기 줄이 늘어서는 '기름대란'마저 벌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이 줄어든 러시아도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겪었다. 러시아는 건설, 청소, 택시업 등의 분야에서 옛 소련권인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이민 노동자들을 많이 이용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이 폐쇄되면서 본국으로 돌아갔던 많은 외국인이 러시아로 돌아오는 길이 막히자 러시아 내에서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빚어졌다.
코로나19 대유행 후 2년 가까이 외국인 입국을 통제하는 국경봉쇄 정책을 시행한 호주도 요식업 등의 극심한 인력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이에 호주요식협회는 요리사, 커피 바리스타, 식당·카페 매니저 등 요식업종에 10만 명 가까운 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 정부는 역대급 구인난에 외국인 임시 비자를 확대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 대책에 따라 미국 고용주들은 내년 3월 말까지 비농업 분야 서비스·생산직에 멕시코, 아이티 등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됐다.

심각한 구인난은 각국에서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결과를 빚었다.

미 연방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민간 부문 임금은 전년 동기보다 4.6% 상승했다.

특히 숙박·음식·서비스업 임금은 무려 8.1% 뛰어올랐다.

외국인 인력 부족으로 극심한 구인난을 겪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건설업 임금은 지난해 들어 7월까지 7% 급등했고, 운전기사 임금도 5.7% 올랐다.

임금 상승은 전 세계적인 초저금리 현상과 더불어 물가 급등을 불러오는 주요 요인이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각국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서둘러 올리며 인플레이션 방어에 나선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기업들이 물가 상승을 반영해 올해 14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임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며 "임금과 물가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 임금 상승은 불가피…"현실에 맞춘 장기 정책 세워야"
구인난에 따른 임금 상승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인 만큼 이를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로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출산율의 지속적인 하락과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를 겪고 있으므로, 이를 고려해 외국인 정책의 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엄진영 연구원은 "외국인 임금이 급등한 것은 코로나 탓에 공급이 줄어든 것이 직접적 원인이지만, 농가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도 한몫한다"며 "한번 오른 임금은 쉽게 내리지 않는 만큼 농가와 사회 전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고용 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개선해 연중 고용이 많은 축산 농가에는 최대 4년간 머물도록 하고,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는 작물 재배 농가는 계절근로자를 쓰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제조업 현장에서 숙련인력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베테랑 기술인력 양성' 등으로 이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배규식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은 "5년 이상 한국에서 성실하게 일한 외국인이라면 해당 분야에서는 베테랑이자 고급 인력"이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실 근로한 이주민에게 영주권을 부여해 한국에 오랫동안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녀 양육이나 의료보험 지원 등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장도 "이주노동자의 급여 상승은 공급이 줄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시장 결과"라며 "이 현상을 인정하고 이들을 숙련직 기술자로 양성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방문취업으로 체류하는 재외동포들도 일정 기간 이상 근무 시 내국인과 동일한 사회보장제도를 부여하는 등 꾸준히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40만 명에 육박하는 불법 체류자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 후 이주노동자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급한 일은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실태 조사"라며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과 임금 상승 등을 이미 겪었던 독일의 이주민 수용 정책을 연구하는 김현정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민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독일은 2000년대부터 고령화와 인구 정체로 성장 절벽에 부닥치자 이주민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며 "한국 사회도 이제 이민을 받아야 할지를 드러내 놓고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