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대학로 원로배우서 월드스타로

1963년 극단 광장에서 연기인생 시작…연극 200여편 출연
TV에선 주로 스님 역할…작품 의미 고려해 치킨 광고 고사
팔순을 바라보는 대학로 원로배우가 미국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안았다. 한국 배우의 첫 수상이다.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78)는 한국시간으로 10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시리즈-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목숨 같은 구슬을 이정재에게 건네며 "우린 깐부(구슬치기 등의 놀이에서 같은 편을 의미하는 속어)잖어"라는 묵직한 대사로 세계인을 사로잡았다. 극 중 참가번호 001번, 뇌종양을 앓는 오일남으로 등장한 오영수는 마냥 신난 모습으로 게임을 즐기다가도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려 들자 "그만하라"고 절규하며 깊은 울림을 줬고, 마지막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한 작품 안에서 해맑은 아이 같다가도 연륜이 묻어나는 노인으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 오영수는 대중에게는 낯설지만 사실 반세기 넘게 연극무대를 지켜온 대학로 터줏대감이다.

1963년 친구를 따라 극단 광장 단원에 들어가면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는 그는 지금까지 '리어왕', '파우스트', '3월의 눈',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1987년부터 2010년까지는 23년간 국립극단을 지키며 40∼60대를 보낸 오영수는 연극계에서 관록을 인정받는 배우로 꼽힌다.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한국연극협회 연기상을 받았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뒤로하고 돌아간 곳도 대학로 무대다. 그는 지난 8일 막이 오른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 역을 맡았다.

같은 역에 캐스팅된 배우 신구(85)는 오영수를 "뒤에서 연극을 받치며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주요 활동 무대는 연극이지만, 드라마와 영화 출연 등으로 카메라 앞에도 섰다.

'오징어 게임' 이전 TV나 스크린에 나온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스님 전문 배우'로 오해하기도 했다.

드라마 '선덕여왕'(2009)에서는 월천대사, 고(故)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에서는 노스님, 2015년 이동통신사 광고에서는 설현과 함께 나룻배에 탄 스님 등으로 등장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오영수는 작은 배역의 어린 후배부터 허드렛일하는 막내 스태프까지 누구에게나 점잖은 '신사'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문화계 행사나 인터뷰 등의 자리에 나설 때면 나이 든 배우들이 설 자리가 부족한 연극계 현실과 국립극단의 정체성 위기 등에 대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어른이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 이후 치킨 프렌차이즈에서 모델 제의를 받았지만, 작품 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지닌 '깐부'라는 대사를 이용해 광고를 찍는 것은 작품 의미를 훼손한다며 완곡히 거절한 사실이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낳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