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너진 안전] ② 외벽 무너진 줄 알았는데…안쪽부터 붕괴

재하도급·부실 공사가 사고 원인?…곳곳에 불법 의심 정황
현대산업개발 "당시 상황 파악 어려워…조사 적극 협조"
붕괴 직전 HDC현대산업개발의 주상복합아파트 최상층에서는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푸집이 콘크리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두둑' 소리를 내며 들리자 현장 작업자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영상에는 39층 바닥에 부은 콘크리트가 가운데로 움푹 패는 모습, 짜증 섞인 탄식을 내뱉는 외국인 노동자의 음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저기 무너졌다", "거기도 떨어졌다" 등 중국어와 한국어가 섞인 다급한 목소리는 당시 작업이 순조롭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해당 영상은 붕괴 발생 약 10분 전인 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께 촬영됐다.

전문가들은 이 영상이 사고 원인 규명에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주목한다.

사고 일주일째인 16일 현재까지 추정되고 있는 주요 붕괴 원인으로는 임시기둥 등 지지대 설치 미비, 콘크리트 건조 기간 부족, 콘크리트 타설 무자격자 재하도급 등이 제기된다. 콘크리트 타설을 무자격자가 재하도급 형태로 시공한 정황이 드러났다.

현대산업개발은 콘크리트 타설 공정을 전문건설업체인 A사에 맡겼다.

붕괴 직전 작업자 8명이 타설에 투입됐는데 이들은 A사에 장비를 빌려준 B업체 소속인 것으로 확인됐다. B업체는 레미콘이 싣고 온 콘크리트 반죽을 고층으로 퍼 올리는 고압 장비(펌프카)를 빌려준다.

콘크리트 타설은 구조물의 안전과 내구에 큰 영향을 주는 작업이다.

일지로 내역을 남길 만큼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공정에 속한다.

콘크리트 반죽 운반 장비 대여 업체가 타설까지 일괄적으로 맡은 이번 작업 행태를 건설업계는 '관행'이라고 말한다.

임시기둥 등 지지대가 보이지 않는 현장의 모습도 부실 공사가 붕괴의 원인임을 의심케 한다.

국내 한 건설사가 붕괴 이후 작성한 사고 분석보고서를 보면 이번 붕괴 원인은 지지력 부족 탓으로 추정된다.
지지대를 충분히 설치하지 않아 최상층 타설 무게를 버티지 못한 구조물이 무너진 것으로 사고 원인이란 추정이다.

다수 시민이 목격한 이번 사고는 발생 시점에는 외벽 붕괴로 알려졌다.

콘크리트 잔해가 외벽과 함께 쏟아져 내린 당시의 모습, 속 빈 껍질처럼 남은 외벽이 가림막 역할을 해 무너진 내부가 노출되지 않은 상황이 겹친 탓이다.

붕괴 후 아파트 건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보도사진을 보면 이번 사고는 수평 판상인 슬라브 등 안쪽 구조물이 무너져내리면서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사진에는 타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층의 아래층들에서 임시기둥 등 지지대를 애초에 설치하지 않았거나 기술적인 판단 미비로 일찍 철거한 정황이 기록돼 있다.

23∼23층에 걸쳐 16개 층에서 발생한 붕괴 구조물은 아파트가 완공됐다면 주요 생활 공간인 거실이 자리했을 공간이다.
콘크리트 반죽을 굳히는 양생 기간이 부족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굳혀야 하는데 공정이 부실해 거푸집 하층부가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경찰은 향후 수사를 통해 콘크리트 타설 공사의 재하도급 등 불법성, 현장에서의 부실시공 여부 등을 가려낼 방침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관련 의혹에 대해 "사고 당시 상황은 파악하기 어려워 답변할 수 없다"며 "정부 기관과 경찰의 조사가 시작된 만큼 사고 원인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만 연합뉴스에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