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100% 소통은 못하지만, 그들은 커피에 진심을 담는다

청각장애인들, 전국 곳곳서 바리스타로 당당히 실력 발휘
"더디지만 열정은 가득해요" "한 잔 음료에 마음 전달되길"

카페거리로 유명한 서울 성수동에는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마음이 샘솟는 카페가 있다.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함께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숲에 온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향긋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소리숲카페'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 13일 낮 12시께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아늑한 조명이 가득한 소리숲카페를 찾았다. 바리스타 3명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며 계산대와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회복지단체인 '사랑의달팽이'가 지난달 28일 문을 연 이 카페에는 인공 달팽이관 수술을 했거나 보청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7명이 일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리가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카페에서 만난 24살 동갑내기 커플 이남희·민수민씨는 "동네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분위기와 서비스 모두 좋은 카페"라고 소개했다.

민씨는 "처음에는 직원이 청각장애인인지도 몰랐을 만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며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서 바리스타로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손정우(26)씨는 "음악이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마스크 때문에 손님 입 모양이 가려져 주문을 알아듣기 쉽지 않지만 집중해서 들으려고 노력한다"며 "비록 서툴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열심히 만들고 있으며 손님들에게 커피가 맛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손씨는 "인공 달팽이관 수술을 한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손님으로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분들이 저희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를 보면서 '우리 아이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미각·후각에 더 예민하게 반응"…바리스타 일에 잘 맞아
바리스타로 일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접할 수 있는 곳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은 사회복지법인(복지관)이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여러 기관에서 바리스타 양성 교육과 직업훈련을 받는다.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 과정은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바리스타와 같은 음료 조리사 직종에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청각장애인은 92명이었다.

2018년부터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양성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청음복지관에서는 현재까지 300명이 교육과정을 수료했고 그중 169명이 바리스타로 취업했다.

청음복지관 강철 직업지원팀장은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는 소리를 듣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미각과 후각에는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며 "이 강점을 활용해 커피를 만들 때 작은 차이점을 구분하고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바리스타는 청각장애인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든 카페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은 2016년 정부세종청사 건물에 1호점을 시작으로 전국 74개 매장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도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있다.
'아이갓에브리씽'은 매장마다 최소 2명 이상, 전체 근로자의 70% 이상의 중증장애인을 채용하고 있다.

272명의 중증장애인 근로자 중 14명이 청각장애인이다.

장애인개발원 직업재활팀 박소연 대리는 "매년 20개소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아이갓에브리씽은 일상을 나누는 지극히 평범한 공간이라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만나며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해지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갓에브리씽' 인천서구청점에서 일하는 청각장애인 김진희 씨는 복지관에서 직업훈련을 받으면서 바리스타라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우유 거품을 낼 때 온도를 잘 못 맞출 정도로 초짜였지만 어느덧 신입 바리스타 직원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주눅 들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어엿한 4년 차 바리스타가 됐다.

2007년부터 장애인 채용을 시작한 스타벅스에도 중증 장애인 365명과 경증 장애인 72명이 일하고 있다.

이 중 48명은 관리자 이상 직급이다.

스타벅스 최초 청각장애인 점장인 권순미 씨는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소통하는 바리스타를 꿈꾼다.

그는 "처음에 속도는 더디고 느렸지만, 노력과 열정으로 꽉 찬 성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어 행복하다"고 전했다.

◇ '실력 겨루며 역량 키우는' 바리스타 대회도 성황
청각장애인 바리스타가 늘면서 관련 대회도 생겼다.

청음복지관은 2013년부터 매년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초기에는 청음복지관 직업 적응훈련 과정을 수료한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소규모 대회를 진행하다가 참여를 희망하는 청각장애인이 늘면서 2019년부터는 전국대회로 확대했다.
청음복지관 강철 팀장은 "대회 진행 영상을 본 카페 업체에서 (청각장애인) 채용 문의를 하는 걸 보고, 대회를 통해 청각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도 편견 없이 삶의 터전에서 인정받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도 2015년부터 음료 지식, 숙련도, 라떼아트 등의 실력을 겨루는 '장애인 바리스타 챔피언십' 대회를 열고 있다.

2021년도 우승자 청각장애인 김동민 씨는 "장애인 직원도 매장의 구성원으로 다양한 역할 수행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앞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더 많이 배워서 다른 장애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오해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스타벅스 권순미 점장은 "고객이 직원을 불렀는데 못 들어서 고객을 무시한다고 오해하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권 점장은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위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며 "소리로 100% 소통은 이뤄지지 않아도 바리스타로서 최상의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진정성 있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동민 씨에게도 스타벅스에 입사한 지 8년이 넘었지만 '비장애인과의 소통'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김씨는 '진심'의 힘을 믿는다. 김씨는 "고객과 소통할 때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행동과 눈짓으로도 마음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한 잔의 음료에 집중해 좋은 품질의 음료를 만들어드리는 거로 제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