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민심 르포] '보수의 심장' 대구는…"일단 바꾸자" vs "둘다 싫어"

'인물론'보다 '정권교체'에 방점 찍은 중·장년층…"尹, 朴에 사과해야" 목소리도
'비호감 대선'에 실망한 젊은층…"결정 안했다" 부동층도
"윤석열이 정치에는 쪼매 어두운데…"
동대구역에서 만난 79세 남성 백모 씨의 말끝은 흐릿했다. 대구에서만 70년 살았다는 그는 결국 "그런 사람이 깨끗하게 일 안 하겠나"라며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그러자 옆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이고 하던 사람이 해야지. 전 세계에 병이 오니까 어쩔 수가 없지." 이름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 70세 여성의 현 여권으로의 정권 재창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이었다. 7∼8일 이틀간 둘러본 '보수의 심장부' 대구는 겉보기엔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 이야기가 나오면 속에 쌓아뒀던 말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 '인물론'보다 '정권교체' 외치는 중·장년층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주로 '정권교체론'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였다. '누구를 뽑겠다'라는 '인물론'보다는 '바꿔야지'라는 대답이 주로 돌아왔다.

대구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는 권모(73·여성) 씨는 "나라 꼬라지를 이래 만들어갖고, 정권 교체를 해야 합니다"라며 "코로나로 힘들어요.

하루에 이 옷 한두 개밖에 못 팔아요. 그리 밥 먹기가 힘들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문시장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 탓에 평소보다 한산했다.

권씨의 눈에는 이내 눈물이 고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거론하면서다.

"문재인이 박근혜 그 연약한 여자를 4년 동안 잡아넣고 보복 정치를 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박 전 대통령을 수사했다'는 기자의 말에는 "그것도 있긴 있는데예, 그건 직업으로서 어쩔 수 없는 기고"라며 "윤석열이가 박근혜한테 가서 죄송하다고 인사해야지,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라고 했다.

한 가방 가게로 들어섰다.

50대 남성 이모 씨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씨는 "코로나로 타격이 엄청나다.

여기가 서문시장에서 목이 제일 좋은 통로인데 거리에 사람 다니는 것을 보라"며 "이재명·윤석열 둘 중 딱히 마음이 가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고르라면 저는 윤 후보를 고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구는 이성보다 감성이 강한 동네"라며 "(윤 후보가) RE100(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을 모를 수도 있지 않으냐. 신도 아닌데 어떻게 다 알고 정치판에 뛰어드느냐"라고 되물었다.

한 약초 가게에는 장년층 상인 세 명이 난롯불을 쬐고 있었다.

기자를 보자 이들은 경계의 눈초리로 마스크를 코까지 황급히 올렸다.

'서울에서 대선을 취재하는 기자'라고 소개하자 이내 말문이 트였다.

70대 남성 김씨는 "우리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권을 바꿀 사람은 윤석열밖에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60대 여성 이씨도 "일단 바꿔야지예"라고 했고, 또 다른 여성도 "바꿔야 합니더!"라고 맞장구쳤다.

이씨는 "지금 정권은 바꿔야 하겄고…"라며 "윤석열이 미숙하니 해싸도 지금 바꾸려면 윤석열밖에 없으니까"라고 덧붙였다.
◇ '무조건 尹' 아닌 젊은층…'스윙보터' 성향도
서문시장 가게 9곳을 돌아다녔지만, 대답은 대다수가 '정권교체'였다.

딱 한 사람은 답이 달랐다.

전통 과자를 파는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대선에 관해 묻자 "정치를 잘 몰라서"라며 손사래를 쳤다.

동성로로 발걸음을 옮겨봤다.

평일 오후인데도 '젊음의 거리' 동성로는 20∼30대 발걸음으로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남녀 가릴 것 없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에 대해 물으면 '정치에 관심 없다', '바쁘다'며 냉랭하게 지나쳤다.

표정을 잔뜩 찌푸리기도 했다.

한양대 1학년인 남성 신모(19) 씨는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동성로를 걷고 있었다.

신씨는 "아직 결정 못 했는데, 요새 보면… 없는데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신씨는 "이재명도 싫고 윤석열도 싫어요.

차악이 없어요"라며 "주변 30대 형들은 '이재명을 뽑는 게 안 낫겠나'라는 말도 하고, 엄마 아빠 세대는 차라리 윤석열을 뽑는다고 하고…"라고 했다.

신씨는 '첫 대선 투표인데 투표하러 갈 거냐'는 질문에는 "아 가야죠. 그런데 계속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한 여대생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윤수현(23) 씨는 "지방대에 다니는데 지역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정책과 공약을 이 후보가 많이 내세우는 것 같고 그 부분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여성을 소외시킨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여성으로서 국민의힘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며 "여성 문제에 대해 너무 급진적으로 나아가지 않고 현실적 방향을 제시하는 게 민주당인 듯 하다"고 답했다.

윤씨는 "지금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는데 집에서는 아예 정치 이야기를 못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대선에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약국에서 일하는 40대 여성 김모 씨는 "결정은 안 했는데 윤 후보는 아닌 것 같아요"라며 "아휴 정말 비호감 대선"이라고 토로했다.

김씨가 "대구는 원래 보수 쪽이니까 사람이 아니라 당을 보고 뽑는 것 같다"고 하자, 옆에 있던 50대 여성 약사는 "그래도 대통령 시키면 잘하지. 민주당이 너무 엉터리인 것 같지 않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에 김씨는 "그래도 윤석열이 뭘 알아야 시키죠. 너무 모르잖아요"라고 했다.
◇ '먹고 살기 힘들다' 이구동성
"이제껏 제가 겪어본 결과 누가 돼도 큰 변화 없이 똑같더라고예…"
60대 택시기사 황태언 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황씨는 "여기 택시 줄 서 있는 것 보세요"라고 토로했다.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의 시민들은 저마다 의견이 달랐지만, 정치권에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동대구역 앞에 설치된 '3월 9일 대통령선거.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대한민국' 조형물을 대구 시민들은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