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서 펴낸 헌법전문가…이석연 前 법제처장, 10년 연구 끝 '광개토왕' 출간

종부세 위헌소송 맡은 법률가
법조인 안 됐으면 역사가 됐을 것

"보물같은 왕릉비, 국민이 알아야"
“어느 외국 교수가 그럽디다. 중국은 남의 역사도 자기 걸로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한국은 있는 역사도 왜 외면하냐고요. 광개토왕릉비가 여기에 딱 맞는 말이지요. 이 귀중한 역사 기록을 온 국민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사진)의 사무실에는 법률 서적만큼이나 책장을 가득 채운 것들이 있다. 사기, 일본서기, 자치통감 등 고전 역사서다. 종합부동산세 위헌 소송 등을 도맡아 헌법 전문가로 잘 알려진 이 전 처장은 “법조인이 아니었다면 역사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최근 그는 고구려 전성기의 두 왕을 다룬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전 처장이 공직 시절부터 10년 넘게 틈틈이 광개토왕에서 장수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의 전성기 역사를 연구한 책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이 전 처장은 “당대 고구려인들이 직접 기록한 광개토왕릉비를 중심으로 우리 고대사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며 “이런 기록이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제대로 실리지 못해 펜을 들게 됐다”고 말했다.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광개토왕릉비를 중심으로 삼국사기가 담지 못한 고구려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삼국사기가 고구려 멸망 이후 수백 년이 지나 편찬된 만큼 당대인이 기록한 왕릉비를 중심으로 고대사를 봐야 한다는 게 이 전 처장의 주장이다. 예시로는 왕릉비에서 기록이 자세히 등장하는 ‘수묘인(守墓人)’을 들었다. 기존에는 왕릉을 수호하는 묘지기 제도로 분석했지만, 이를 넘어 왕릉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의 사회조직으로 성격을 확대해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전 처장은 “왕릉비 원문과 함께 참고 서적으로 남당 박창화가 남긴 《고구려사략》을 인용했다”며 “왕릉비가 있는 중국 지안시 현지 답사를 네 번이나 다녀오는 등 고증에 철저히 임했다”고 했다.이 전 처장은 어려서부터 역사 및 한문 공부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한다. 초등학교 국사책을 달달 외울 정도로 역사학을 좋아했다. 법학 공부로 진로를 바꾼 뒤에도 역사는 늘 취미로 공부해왔다. 광개토왕릉비 연구를 시작한 것은 법제처장을 맡기 직전인 2007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삼국사기 속 광개토왕에 대한 기록을 접하면서 부실한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삼국사기는 국내 역사학계의 가장 중요한 사료입니다. 그런데 광개토왕의 정복 관련 기록은 세 번 정도만 나옵니다. 이건 다른 고구려왕들과 비슷해 ‘광개토’라는 칭호를 붙일 만한 수준이 아니죠. 왕릉비 속 정복 사업들도 삼국사기에는 많이 빠졌습니다. 삼국사기의 위상을 고려하면 이는 큰 문제라고 생각했고, 직접 알아보자고 결심해 왕릉비 연구에 빠졌습니다.”

이 전 처장은 “광개토왕의 정신을 잇자는 의미에서 왕릉비 모형을 광화문에도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