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CSR·준법 경영과 왜 다른가

ESG 활동은 이해관계자주의와 CSR, 준법경영, 자선활동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엄연히 다른 부분도 있다. 법령을 준수하는 것이나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수립하는 것은 ESG와 관계없이 기업이 당연히 지켜야 할 일들이다
[한경ESG] ESG와 법⑥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6) 기후행동 재무장관 연합'에 참석차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방문 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패트리샤 에스피노사 UNFCCC 사무총장과 '한-UNFCCC 협력 MOU' 서명식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정확한 의미를 되짚어보자. 최근 몇 년 사이 ESG 열풍이 강하게 불다 보니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이면 다 ESG 활동이라 부르고, 기업이라면 응당 지켜야 하는 환경법이나 공정거래법, 노동법, 상법을 내용에 따라 각각 환경·사회·지배구조로 나누어 이를 ESG 법령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일반 기업과 달리 이익 추구가 주된 목적이 아닌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도 ESG 경영을 실행하겠다고 선언하고, 머그잔 사용하기 캠페인이나 임직원들의 봉사활동, 기업의 기부 행위를 ESG 경영의 성과로 선전하기도 한다. 평소에 주장하는 내용을 ESG로 포장해 “ESG 경영을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나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내용도 흔히 보인다.그런데 이렇게 ESG라는 용어를 폭넓게 쓰다 보니 도대체 ESG가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뚜렷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ESG가 옛날에 하던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이나 “정부에서 ESG를 강조하니까 ESG 위원회도 만들고 ESG 경영 선포식도 하지만, 몇 년 이어지다 사그러들 것” 같은 비관적 말들은 ESG 논의의 의미와 배경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나오는 것이다. ESG라는 것은 법률에 정해진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근의 ESG 열풍이 단순한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활동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환경·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ESG 논의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SG’ 용어 남용 경계해야

ESG란 “투자자나 기업이 투자나 경영 의사결정을 할 때 재무적 사항뿐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같은 비재무적 사항을 함께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투자자나 기업이 사업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재무적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ESG는 여기에 더해 비재무적 요소까지 고려하는 것이 투자자의 장기적 투자 이익 증대나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처럼 ESG 논의는 투자자나 기업의 이익 추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나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기업의 사업 내용 자체를 친환경, 친사회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그 핵심이 있다.그렇다면 ESG 논의는 기존의 이해관계자주의,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준법, 자선활동과 어떻게 다른가? 먼저 이해관계자주의와 비교해보고자 한다. ESG 논의는 회사가 주주의 이익 외에도 환경·사회문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회사가 채권자, 근로자, 공급업체, 소비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주의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주주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이른바 도구적 이해관계자주의(instrumental stakeholderism)는 ESG 논의나 주주중심주의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이 제품 생산과정을 친환경적으로 개선함에 따라 기업의 평판이 좋아지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가 늘어나는 경우가 그 예다.

반면 회사가 주주에게 분배되는 몫을 희생해서라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는 이른바 다원적 이해관계자주의(pluralistic stakeholderism)는 ESG와 다소 구별된다. ESG 논의는 ESG 요소의 고려가 환경·사회문제 해결이나 이해관계자 보호뿐 아니라 투자자나 기업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원적 이해관계자주의가 기업이 창출한 이익을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분배의 문제에 초점을 둔다면, ESG는 기업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해 이익을 창출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다음으로 준법 및 컴플라이언스와의 차이점이다. ESG는 기업이 법률에 의해 강제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기업이 환경·사회문제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준법이나 컴플라이언스와 다르다. ESG는 온실가스 관련 법·규제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화되는 것과 같이 가까운 미래에 규제로 전환될 것이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리스크 관리에 해당한다. 미국의 총기 규제처럼 정치적 이유로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안에 대해 연기금 등이 총기를 생산, 유통하는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주주 관여(shareholder engagement)에 해당한다.기업이 적용되는 법률을 준수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ESG 경영이라 볼 것은 아니다. ESG는 법률이나 규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환경·사회문제를 의결권 행사를 통해 해결할 것을 시도하고,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법률에서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환경·사회문제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준법이나 컴플라이언스와 구분된다.
최만연 블랙록자산운용 대표가 지난해 5월 서울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K-ESG 얼라이언스 발족회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선활동과도 구별되는 ESG

마지막으로 기업의 자선활동이나 사회적책임과의 구분이다. ESG는 기업의 사업활동 자체를 친환경, 친사회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기업이 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에 관한 자선활동과 구분된다. 자선활동이 이른바 ‘정승같이 쓰는 것’을 중시한다면 ESG는 ‘정승같이 버는 것’에 초점을 둔다. 기업의 자선활동에 대해서는 주주들의 선호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주주는 학교 설립 등 교육, 연구 사업에 회사 이익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고, 어떤 주주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회사의 자선활동은 자칫 전체 주주보다는 이사회나 경영진의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이뤄질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점에서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기업이 사업 과정에서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다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보는 등 ESG 논의가 활발하게 된 이후에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과 ESG 논의가 통합되는 경향을 보인다. ESG나 CSR이 기업의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여러 실증 연구도 양자를 크게 구분하지 않고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CSR이 기업의 자선활동 등 부수적 활동에 초점을 둔다면, ESG는 기업의 핵심 사업 내용을 어떻게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전 세계의 ESG 열풍으로 ESG 의미가 논의 초기보다 넓게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ESG가 남용되는 경향을 보인다. 기업이 환경법이나 노동법 등 법령을 준수하는 것이나, 지배주주의 지배권 남용을 방지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 효율적이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수립하는 것은 ESG 논의와 관계없이 당연히 기업에 요구되는 것들이다. ESG 열풍 속에서도 ESG 논의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