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내가 우습냐?"

군대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화를 내거나, 군기를 잡을 때 흔히 쓰는 말이 "너, 내가 우습냐"다.

그러면 하급자는 황급히 부동자세를 취하고 "아닙니다"하고 큰 소리로 답한다. 우습게 보이기는커녕 하늘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상대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반사 답변이다.

이 경우 '우습냐'는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확실히 눌러 놓고 서열 관계를 확인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작년 11월 울산의 한 거리에서 60대 남성이 생면부지의 50∼60대 여성 2명을 흉기로 찔러 상해를 입힌 사건이 있었다. 그가 진술한 범행동기는 두 여성이 웃으면서 지나가는 것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범행 10분 전 길 가던 남성 3명과도 시비가 붙어 인근 식당에서 흉기를 가지고 나와 이들을 찾아다니던 중이었다고 한다.

'내가 우습냐'가 범죄로 비화한 케이스다. 그는 21일 울산지법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학이나 회사에서 후배가 건방지게 굴거나, 자신이 기대한 태도에서 벗어났다고 느낄 때 '선배가 우습냐'고 윽박지르던 때가 있었다.

'논리가 부족하거나 말이 딸리면 꺼내 드는 비장의 무기가 선배가 우습냐인데 이런 선배는 대체로 우습다'는 내용의 인터넷 글을 오래전에 본 기억이 있다. 요즘 대학가나 회사에서 선배랍시고 이런 말 꺼내면 꼰대 소리 듣는 것은 양반이고 큰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우습냐'이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페이스북에 조종태 광주고검장이 보내온 문자 내용을 캡처해 공개했다.

조 고검장은 "국회가 우습냐고 하셨더군요.

제가 묻고 싶습니다.

국민이 그렇게 우스운가요?"라고 했다.

김 의원은 "이게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에게 검사가 보낼 문자인가.

이처럼 적의를 드러내는 것을 보니 곧 저에 대한 보복 수사를 준비하겠다"고 반응했다.

앞서 김 의원은 19일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이 국회 법사위 소위에 출석해 검수완박 법안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반대 입장을 밝히자 "국회 논의가 우습냐"고 면박을 줬다.

김 의원은 검사나 법원행정처 차장이 다수당 입장에 거슬리게 행동하면 입법부를 우습게 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민주당 홍서윤 대변인은 지난 9일 검수완박에 대한 검찰의 집단 반발 움직임이 일자 "검찰총장 대통령 시대가 다가왔다고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가 우습게 보이느냐"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똑같은 사안에 반대하며 사표를 던졌을 때 검찰은 비교적 조용했다.

검찰개혁 매파인 추미애ㆍ박범계 법무부 장관 밑에서 지난 1년간 차분하게 인사에 순종하던 그들이 검사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민주당이 현 정부 임기 내 법안 처리를 서두르자 집단 반발하고 있는 모습이 민주당 눈에는 우습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검찰이 민주당을 우습게 보기 시작했거나.

힘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것이건, 분노 조절 실패나 열등감의 발로이건, 논리의 부족 탓이건,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것이건 간에 '내가 우습냐'며 드잡이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웃음거리다.

사자는 함부로 성내지 않는다고 한다. 우습게 보이지 않도록 행동하면 "내가 우습냐"는 말은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