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공동가치 기반 외교"·왕이 "신냉전 진영대치 반대"

한중 외교 수장,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소통…한중관계 전반 논의
왕이 "한중, 디커플링 반대하고 핵심이익 존중해야"…韓 IPEF 참여 견제
오수진 기자·조준형 특파원 = 한국과 중국은 16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외교부서 수장간 소통을 갖고 북한의 코로나19 확산과 북핵 문제 대응 방안, 양자 관계 발전 방안 등을 논의했다.한중 양국 외교부에 따르면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화상 통화를 하고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한중 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

◇박진 "북핵 고도화는 역내 정세 악화"·왕이 "한반도 전체적으로 평화 유지"

두 사람은 올해 들어 빈번하게 이뤄진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가능성 등으로 갈등 지수가 높아지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인식 면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박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한반도와 역내 정세를 악화할 뿐 아니라 양국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한중이 협력해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도모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의 추가 도발 자제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

반면, 왕 부장은 "각국 노력하에 한반도는 전체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양국과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환경을 제공했다"고 말했다.박 장관과 왕 부장은 최근 북한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나란히 우려를 표명했다.

또 북한 주민들의 코로나 대응을 돕는 인도적 지원 필요성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상호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박진 "역내 공동가치·이익 기반 외교"·왕이 "진영 대치에 반대해야"미중간의 치열한 전략경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중관계의 현실을 반영하듯 양측은 대외정책과 관련해 서로 뼈있는 말을 주고 받았다.

한국이 국익과 함께 '자유 민주주의'라는 공동 가치를 강조한 반면, 중국은 '진영 대치 반대'를 강조하며 중국 압박을 위한 미국의 동맹국 규합에 한국이 참여하지 말 것을 은근히 촉구한 것이다.

박 장관은 왕 부장에게 한국 정부가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비전을 통해 역내 공동 가치와 이익에 기반한 외교를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중국도 책임 있는 국가로서 적극적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양국이 각자의 발전 경로와 핵심 이익, 각자의 문화와 전통, 습관을 상호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냉전의 위험을 방지하고 진영 대치에 반대하는 것은 양국 근본이익에 관련된 것"이라며 미국 주도의 대(對) 중국 압박에 한국이 가담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박진 "상호존중 바탕 성숙한 한중관계를"·왕이 "한중, 분리할 수 없는 파트너"

박 장관과 왕 부장은 수교 30주년의 해인 올해 양국 관계의 건전한 발전과 양국 당국간 소통 노력의 필요성에 뜻을 같이 했다.

박 장관은 "한중관계가 금년 수교 30주년을 맞아 상호존중과 협력 정신을 바탕으로 보다 성숙하고 건강하게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며 "양국이 각자의 가치ㆍ비전을 존중하면서 공동 이익을 모색하고 양자협력과 역내 및 글로벌 평화ㆍ번영을 조화시키자"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양국관계의 지속적 발전과 관리를 위해 외교당국간 적시 소통 노력이 중요하다며 양 정상의 상호방문 포함 고위급 및 각 급간 교류ㆍ소통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와 더불어 경제ㆍ보건ㆍ기후변화ㆍ미세먼지 등 실질협력 심화, 한중 문화교류의 해(작년과 올해) 계기 문화ㆍ인적 교류 확대를 통한 양 국민간 상호이해 및 유대 심화,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협력 강화, 지역ㆍ글로벌 문제 협력 강화 등에 주안점을 두고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했다.

왕 부장은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며 "중국과 한국은 이사할 수 없는 영구적인 이웃이자 분리할 수 없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시종일관 한국과 중·한 관계를 전략적이고 포괄적 각도에서 바라본다"며 수교 30년 동안 풍파를 겪은 양국 관계를 소중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 속담에 '군자는 큰 길로 간다'는 말이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상호 존중과 협력 정신에 입각해 한중 관계의 새 시대를 열자고 했고, 중국은 이를 환영했다"고 말했다.
◇왕이 "한중, 디커플링 반대해야"…미 주도 IPEF 참여 견제

왕 부장은 이날 소통 강화 및 신뢰 기반 다지기, 호혜 협력, 인적 교류, 국제협력 및 지역 안정 수호 등 한중이 강화해야 할 4대 사항을 거론하면서 '호혜 협력' 대목에서 양국이 "'디커플링'의 부정적 경향에 반대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달 하순 한일 순방 계기에 출범할 것으로 알려진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이 참여하는 데 대한 견제의 의미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번 주 방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IPEF를 통한 글로벌 공급망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IPEF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한 중국이 경제적 영토를 확장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고안한 협의체로 평가된다.

무역, 공급망, 탈탄소 및 인프라, 탈세 및 부패 방지 등 4개 주제를 중심으로 참여국의 경제 분야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협의체인데,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협력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

또 왕 부장은 "중국의 방대한 시장은 한국의 장기적인 발전에 끊이지 않는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며 디지털 경제, 인공지능, 신에너지 등 영역에서 각자 장점이 있는 만큼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한편, 중국측 보도자료에는 박 장관이 "한국은 시종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소개됐는데, 한국 측 보도자료에는 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