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묻힌 황무지에서 옥토로…양구 해안면 무주지의 슬픈 역사

주인 없는 땅 일군 이주민들…국유화 과정서 정부와 개간 비율 견해차
갈등 장기화 속 문제 해결 실마리…연구용역 결과 무조건 수용 합의
강원 양구군 해안면은 한국전쟁 당시 8번이나 점령군이 바뀔 정도로 격한 전투를 통해 국군이 수복한 땅이다. 당시 원주민의 80%가 북한으로 피난했지만, 전쟁이 멈춘 뒤 휴전선에 가로막혀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서 대규모의 '무주(無主)부동산'이 생겨났다.

양구 해안면 무주지는 3천429필지, 960만6천809㎡로 국내 최대 규모다.

정부는 1956년과 1972년, 2차례에 걸친 집단 이주 정책을 통해 이주민에게 이 땅의 경작권을 주면서 개간하도록 했다. 이 약속을 받고 해안면으로 향한 이주민 600여 명은 황무지 속의 돌과 포탄, 지뢰까지 골라내면서 비옥한 농토로 일궈냈으나 토지 소유권은 부여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1970년대 초반 2차 집단 이주 정책을 통해 해안면 만대리에 정착한 주모(72)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트랙터는커녕 경운기도 귀한 시절이라 나라에서 나눠준 땅으로는 먹고 살기 어림도 없었지. 귀한 경운기 빌려서 비탈길을 일구다가 구르기 일쑤고, 소달구지는 힘이 없어서 나무뿌리도 뽑지 못했지만 그래도 척박한 땅에 감자, 옥수수, 콩을 심으며 버텼지."
수십 년간 농사를 지어온 땅이지만 주인 행세를 할 수 없었던 이곳 주민들은 2018년 면사무소를 통해 나라에서 땅을 돌려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정부가 주민들에게 경작지 2만9천여㎡(9천 평)만 등기를 허가하고, 나머지 땅은 국유화하는 정책을 세웠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일군 땅을 경작비 한 푼 못 받고 나라에 돌려주기는 억울했기에 집단행동에 나서며 무주지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했다. 이들은 국민권익위에 국유지·무주지 경작자 간 대부금 역차별, 무주부동산 경작권 불법 매매 해결, 경작지 재산권 인정 등을 지속해서 요구하며 고충 민원을 제기했다.

양구군도 이들을 돕고자 국회와 중앙부처 등을 돌며 6만㎡ 이상의 모든 면적에 대해 대부가 가능하도록 기준 면적을 상향 조정하고 유예기간을 도입해 실경작자가 보호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던 중 2020년 해안면을 포함한 북위 38도 이북 접경지역 무주지 9천397만3천248㎡를 정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특별조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70여 년간 해결되지 못한 토지 정리 사업이 해결 계기를 마련했다.

범정부 차원의 문제 해결 노력 끝에 마련한 특별조치법은 원주민이 이북으로 피난을 갔거나 보증인을 위촉하지 못해 소유자 복구 등록 신청이 불가능한 토지는 원천적으로 국유화할 수 없는 조항을 삭제해 국유화의 길을 텄다.

아울러 이 법에 따라 취득한 국유재산은 '10년간 처분 불가능' 혹은 '경쟁입찰' 등의 조건을 적용받지 않아 정부가 수의계약의 방식으로 매각 또는 대부가 가능하게 했다.

정부도 국무회의를 통해 '수복지역 내 국유화된 토지의 매각 및 대부에 관한 사무처리 규정안'을 의결해 무주지를 경작민이 사들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한국국토정보공사와 협력해 지적 재조사 측량과 연계한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무주지 국유화를 거쳐 매각·대부 절차까지 단계별로 사업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개간 비율 산정'이 발목을 붙잡았다.

주민들은 "무주지 개간 전과 후 상황을 지금 정확하게 비교·평가할 수 없으니 개간 비율을 적어도 60%는 반영해 우리 부모들이 피땀 흘려 황무지를 일군 노고를 인정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정부는 "개간 비율은 법적 테두리에서만 산정할 수 있다"며 "개간 전·후 상황을 규정하기 어려워 한국감정평가협회의 토지 보상 평가 지침에 따라 비율을 30%로 한다"는 견해를 지켰다.

하지만 길었던 갈등 해결에 실마리가 마련됐다.

주민 단체와 기획재정부, 국민권익위원회, 산림청, 양구군,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문제 당사자들이 개간비 산정 연구용역 결과를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일 해안면사무소에서 행사를 열고 국유지 개간비 산정 연구용역 결과 수용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는 "해안면 내 국유지 매각을 위한 감정평가의 기초자료로 반영하기 위해 실시 예정인 '양구군 해안면 내 국유지 개간비 산정 연구용역 : 미간지 개간에 필요한 개간비 산정 목적' 결과에 대해 신의와 성실의 원칙을 바탕으로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합의한다"고 명시했다.

이날 협약식에서 한기택 해안면 전략촌 개간비 보상대책위원장은 "어려운 결정을 해준 여러 기관에서는 주민들이 땅을 가지는 그날까지 노력해달라"며 "이 일을 무사히 마치면 해안 주민들은 농업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노중현 기획재정부 국유재산정책과장은 "개간비 산정 문제의 합리적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출발점에 온 것"이라며 "오늘을 계기로 개간비 문제를 포함한 국유지 주민 매각이 잘 풀리길 기원한다"고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