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홍콩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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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부러워요.
우리는 돌아갈 고향이 없어요. 지금의 홍콩은 우리가 알던 홍콩이 아닌데 이곳을 떠나 우리가 돌아갈 고향은 없잖아요.
"
이렇게 말하는 홍콩인 A씨의 얼굴에서는 우울함이 묻어났다.
'코로나 블루'가 아니라 '홍콩 블루'다. 그는 "외국인은 홍콩이 싫으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홍콩인인데 내가 나고 자란 홍콩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자유분방하고 낭만이 가득했던 국제도시 홍콩, '천장지구'와 '중경삼림'의 추억이 어린 홍콩은 더 이상 예전의 홍콩이 아니다. 2019년 최대 200만명에 달했던 반정부 시위대는 흔적조차 없어졌고 민주 진영의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혔거나 해외로 도피했다.
30여년 이어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행사는 하루아침에 '말살'돼버렸고, 홍콩외신기자클럽은 26년 역사의 인권언론상 주관을 포기해버렸다.
급기야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90세의 추기경이 '외세와 결탁' 혐의로 체포되는 일도 벌어졌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냉소주의와 무기력함이 퍼져나가고 있다.
야권은 전멸했고 몇 안 남은 인사들과 학자들이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피하는 와중에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올해 발표한 180개국 언론의 자유 순위에서 홍콩은 148위로 추락했다. 이 모든 것이 2020년 6월 마지막 날 발효된 홍콩국가보안법 때문이고, 그 법을 적극 집행한 이가 오는 7월 1일 행정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공안 정국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마치 전쟁이 휩쓸고 간 듯 2년만에 홍콩이 돌변했다.
여력이 되는 이들은 이민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주로 젊은층이지만, 영국이나 캐나다 등지로 유학 간 후 돌아오지 않겠다는 자녀를 따라 짐을 싸는 50대 이상도 적지 않다.
홍콩인 B씨는 "집이 두채 정도 있는 중산층 이상 홍콩인들은 요즘 이민을 한번쯤 생각한다"며 "홍콩의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집 팔아서 투자 이민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외국살이가 쉽겠나.
제일 좋은 것은 안 떠나도 되는 상황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현지 시민사회단체 영국홍콩교민협회(HKB)가 최근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영국으로 이주한 지 1년이 안 된 홍콩인의 거의 전반 가량이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토로했고 4분의 1은 2019년 시위와 국가보안법 시행과 관련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 행렬에 대해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친중 진영 일부 인사는 "붙잡지 않는다.
홍콩 여권을 반납하고 가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입국자 격리 정책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외국인의 엑소더스도 진행되고 있다.
확진자 발생 등으로 여객기 운항 취소도 빈번해 홍콩을 오가는 것이 너무 힘들자 이에 질려 버린 외국인들이 떠나고 관광객의 발길은 뚝 끊기면서 홍콩은 중국과 함께 세계로부터 고립돼 가고 있다.
물론 언뜻 보면 친중 진영의 주장처럼 시위가 없어진 홍콩은 평온한 듯도 보인다.
19일 술집과 가라오케 영업이 재개되고 식당의 영업시간이 연장되면서 화창한 5월의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그러나 과연 속도 그러할까. 홍콩프리프레스(HKFP) 취재진이 지난 8일 붐비는 식당을 찾아 시민들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사람들은 '부처님 오신 날', '어머니의 날'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취재진이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냐고 거듭 물어도 대부분이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날은 홍콩의 행정 수반을 뽑는 선거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구 740만명의 0.02%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치른 '체육관 선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전무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당선자의 이름이 뭐라고?"라고 되묻기도 했다고 HKFP는 전했다.
2019년 11월 구의원 선거 당시 홍콩 전역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들썩이고 결국 야권이 압승했던 '역사'는 딴세상 이야기가 돼버렸다.
변화에 대한 열망은 거세됐고 무관심과 외면, 침묵이 내려앉았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푸퉁화(만다린·중국 표준어) 교육 강화를 강조하는 가운데, 홍콩 정부는 18일 푸퉁화 구사 능력을 공무원 승진 요인에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인들은 광둥화(캔토니즈)를 구사한다.
표기법도 중국의 간체자(簡體字)가 아닌 번체자(繁體字)다.
방송에서 푸퉁화가 나오거나 상점의 간판이 간체자로 돼 있으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거침없이 진행되는 '중국화' 속에서 이에 저항하는 홍콩인의 목소리는 이제 '음소거'돼버렸다.
/연합뉴스
우리는 돌아갈 고향이 없어요. 지금의 홍콩은 우리가 알던 홍콩이 아닌데 이곳을 떠나 우리가 돌아갈 고향은 없잖아요.
"
이렇게 말하는 홍콩인 A씨의 얼굴에서는 우울함이 묻어났다.
'코로나 블루'가 아니라 '홍콩 블루'다. 그는 "외국인은 홍콩이 싫으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홍콩인인데 내가 나고 자란 홍콩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자유분방하고 낭만이 가득했던 국제도시 홍콩, '천장지구'와 '중경삼림'의 추억이 어린 홍콩은 더 이상 예전의 홍콩이 아니다. 2019년 최대 200만명에 달했던 반정부 시위대는 흔적조차 없어졌고 민주 진영의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혔거나 해외로 도피했다.
30여년 이어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추모 행사는 하루아침에 '말살'돼버렸고, 홍콩외신기자클럽은 26년 역사의 인권언론상 주관을 포기해버렸다.
급기야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90세의 추기경이 '외세와 결탁' 혐의로 체포되는 일도 벌어졌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냉소주의와 무기력함이 퍼져나가고 있다.
야권은 전멸했고 몇 안 남은 인사들과 학자들이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피하는 와중에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올해 발표한 180개국 언론의 자유 순위에서 홍콩은 148위로 추락했다. 이 모든 것이 2020년 6월 마지막 날 발효된 홍콩국가보안법 때문이고, 그 법을 적극 집행한 이가 오는 7월 1일 행정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공안 정국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마치 전쟁이 휩쓸고 간 듯 2년만에 홍콩이 돌변했다.
여력이 되는 이들은 이민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주로 젊은층이지만, 영국이나 캐나다 등지로 유학 간 후 돌아오지 않겠다는 자녀를 따라 짐을 싸는 50대 이상도 적지 않다.
홍콩인 B씨는 "집이 두채 정도 있는 중산층 이상 홍콩인들은 요즘 이민을 한번쯤 생각한다"며 "홍콩의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집 팔아서 투자 이민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외국살이가 쉽겠나.
제일 좋은 것은 안 떠나도 되는 상황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현지 시민사회단체 영국홍콩교민협회(HKB)가 최근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영국으로 이주한 지 1년이 안 된 홍콩인의 거의 전반 가량이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토로했고 4분의 1은 2019년 시위와 국가보안법 시행과 관련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 행렬에 대해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친중 진영 일부 인사는 "붙잡지 않는다.
홍콩 여권을 반납하고 가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입국자 격리 정책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외국인의 엑소더스도 진행되고 있다.
확진자 발생 등으로 여객기 운항 취소도 빈번해 홍콩을 오가는 것이 너무 힘들자 이에 질려 버린 외국인들이 떠나고 관광객의 발길은 뚝 끊기면서 홍콩은 중국과 함께 세계로부터 고립돼 가고 있다.
물론 언뜻 보면 친중 진영의 주장처럼 시위가 없어진 홍콩은 평온한 듯도 보인다.
19일 술집과 가라오케 영업이 재개되고 식당의 영업시간이 연장되면서 화창한 5월의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났다.
그러나 과연 속도 그러할까. 홍콩프리프레스(HKFP) 취재진이 지난 8일 붐비는 식당을 찾아 시민들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사람들은 '부처님 오신 날', '어머니의 날'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취재진이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냐고 거듭 물어도 대부분이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날은 홍콩의 행정 수반을 뽑는 선거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구 740만명의 0.02%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치른 '체육관 선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전무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당선자의 이름이 뭐라고?"라고 되묻기도 했다고 HKFP는 전했다.
2019년 11월 구의원 선거 당시 홍콩 전역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들썩이고 결국 야권이 압승했던 '역사'는 딴세상 이야기가 돼버렸다.
변화에 대한 열망은 거세됐고 무관심과 외면, 침묵이 내려앉았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푸퉁화(만다린·중국 표준어) 교육 강화를 강조하는 가운데, 홍콩 정부는 18일 푸퉁화 구사 능력을 공무원 승진 요인에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인들은 광둥화(캔토니즈)를 구사한다.
표기법도 중국의 간체자(簡體字)가 아닌 번체자(繁體字)다.
방송에서 푸퉁화가 나오거나 상점의 간판이 간체자로 돼 있으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거침없이 진행되는 '중국화' 속에서 이에 저항하는 홍콩인의 목소리는 이제 '음소거'돼버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