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와 운명에 짓눌린 비극적 사랑 이야기…뮤지컬 '아이다'

눈이 즐거운 화려한 군무·무대 연출…엔데믹과 함께 돌아온 무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운명과 같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뮤지컬 '아이다'의 시작과 끝은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가 읊조리듯 부르는 이 노래로 수미쌍관을 이뤘다.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하고 이국적인 군무와 의상, 기발한 무대 연출, 폭발적인 가창력을 빼놓고 '아이다'를 논할 수 없겠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붓과 캔버스인 셈이다.

'아이다'는 노예로 끌려온 누비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 암네리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아이다는 고통받는 누비아 백성의 지도자라는 책임감과 사랑 사이에서 번뇌하고 라다메스는 개선장군이라는 의무와 자신이 침략한 땅의 여인을 아끼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아이다가 라다메스에게 "주어진 운명이 싫으면 자신이 바꾸세요"라고 일갈하지만, 둘 다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외면하고 사랑만을 좇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천 년 전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이 로맨스가 2022년 관객의 가슴을 거세게 두드릴 수 있는 것은 현대적인 음악과 화려한 무대로 몰입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팝 가수 엘튼 존과 뮤지컬 음악의 전설 팀 라이스가 빚어낸 '아이다' 속 음악은 '라이온킹'의 익숙한 바이브와 지극히 현대적인 감각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라다메스의 아버지 조세르가 야망을 드러낼 때 붉은 배경에서 앙상블이 꽉 짜인 군무를 추는 장면은 방탄소년단의 '마이크 드롭'(MIC DROP)이 연상될 정도다.

암네리스가 '마이 스트롱기스트 슈트'를 부를 때 등장한 대형 목욕탕 세트와 다채로운 의상으로 채운 패션쇼 장면, 라다메스가 아버지의 음모를 깨닫고 부자 갈등이 극에 달할 때 배경의 이집트 눈 문양이 눈을 뜨는 듯한 연출도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도 한몫한다. 아이다 역을 맡은 전나영이 누비아인들의 기대에 내몰려 자신의 의무를 자각할 때 부르는 노래가 홀을 흔들고, 라다메스 역의 김우형의 목소리에는 절절한 사랑의 감정이 담겼다.

암네리스가 밉지 않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은 아이비의 호연 덕분이다.
허영기 가득해도 미워할 수 없는 암네리스와 재기발랄한 누비아 출신 하인 메렙이 재치 있는 대사를 던질 때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웃음과 일요일 저녁에 꽉 찬 객석의 갈채가 엔데믹을 실감케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년 넘게 잔뜩 움츠렸던 공연계가 기지개를 켜는 시점에 돌아온 '아이다'가 더욱 반갑다. 공연은 8월 7일까지 이어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