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참사에 웬말이냐' 비판에도 NRA 연례총회 강행

가수들 출연 거부…텍사스 주지사도 마지못해 불참
무더기 항의시위 예고…'총기 자유화' 트럼프는 참석 예정
미국 내 가장 강력한 총기 로비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가 27∼29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연례 총회를 강행할 예정이라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초등학생 19명이 목숨을 잃은 지 불과 72시간 만에 참극이 벌어진 곳에서 불과 482㎞ 떨어진, 같은 텍사스주에서 총기 소유 권리를 주장하는 이익단체인 NRA의 한해 최대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더타임스는 연례 총회를 하루 앞둔 이날 NRA가 행사를 취소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NRA는 총기 제조업체들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이자 보수층을 기반으로 총기소지 자유화를 추진하는 강력한 로비단체다. 총기 박람회와 함께 열리는 연례 총회는 업계가 제품을 홍보하고 유력 정치인들을 불러 지지세를 과시하는 주요 행사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쉬다가 재개되는 올해 행사는 5만6천㎡가 넘는 총과 장비 전시장으로 홍보됐다.

그만큼 전국의 총기 제조업체와 애호가들을 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텍사스 참사 여파로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저항에 부닥쳤다.
더타임스는 "행사장 밖에 8개 단체가 참여하는 총기 폭력 반대 집회가 예고됐다"며 "민주당 베토 오로크 후보도 시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오로크 후보는 지난 25일 초등학교 총격 참사와 관련한 기자회견 도중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주지사의 말을 끊은 뒤 "주지사는 이번 사건이 예측 불가능했다고 말했지만 이건 완전히 예측 가능했다"며 "당신은 (총기 폭력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일침을 가했던 인물이다.

총기 난사 사건의 여파로 광범위한 사회적 공분이 일자 행사 출연을 거부하는 가수도 나왔다. CNN은 "이번 주말 NRA의 연례 총회에서 노래를 부를 예정이었던 가수 중 최소 4명이 출연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1970년대 히트곡인 '아메리칸 파이'와 '빈센트' 등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인 돈 맥린은 출연을 거부한 뒤 "텍사스에서 일어난 최근의 사건에 비춰볼 때 이번 주 휴스턴에서 열리는 NRA의 행사에서 공연하는 것이 무례하고, 상처를 줄 것으로 생각했다"며 "나는 이 행사에 참석하려고 계획하는 모든 사람이 이번 사건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연례 총회는 NRA 회원들만 참석할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NRA는 현재 회원 수가 500만명에 이른다.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가장 느슨한 곳으로 꼽히는 텍사스의 정치인들에게는 NRA의 막강한 영향력은 물론 회원들의 표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공화당 소속의 대표적인 총기 옹호론자인 애벗 주지사도 들끓는 여론에 차마 NRA 행사장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애벗 주지사는 이날 NRA 연례 총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대신 참극이 벌어진 유밸디를 다시 한번 방문해서 희생자들의 유족을 위로하기로 했다.

애벗 주지사는 27일 NRA 리더십 포럼에서 연설할 예정이었으나 참모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행사 전날 뒤늦게 불참을 결정했다.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사용된 소총 A-15를 제조한 업체 대니얼 디펜스도 연례 총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니얼 디펜스는 "우리 회사 제품 네 개 중 한 개가 이번 끔찍한 총격 사건에 사용됐기 때문"이라며 "지금 NRA 전시회에서 우리 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NRA 연례 총회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을 당시 여론에 떠밀려 총기 규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웨인 라피에르 NRA 회장을 만난 뒤 없던 일이 됐다.

텍사스 출신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예정대로 NRA 연례 총회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NRA 연례 총회는 27∼29일 휴스턴의 조지 R. 브라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