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남매 '회계장부 소송전'…'여동생 패소' 뒤집은 대법원

"장부 열람·등사 청구한 주주, 의심 주장 입증까진 안 해도 돼"
주주가 회사 경영진의 법령·정관 위반이 의심된다며 회계장부 등의 열람·등사를 청구할 경우, 경위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됐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여동생 정은미씨가 서울피엠씨(옛 종로학원)를 상대로 낸 회계장부 열람·등사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서울피엠씨 소수 주주(지분율 17.38%)인 정씨는 대주주이자 사내이사인 정태영 부회장 등 경영진의 부적절한 자금 집행이나 법령·정관 위반 여부를 파악하고 책임을 추궁하겠다며 회계장부의 열람·등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 등이 이에 응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여동생 정씨의 청구를 기각하고 서울피엠씨의 손을 들어줬다.

소수 주주의 열람·등사 청구 이유는 그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로 기재돼야 하는데, 정씨가 적은 청구 이유만 봐서는 '경영진의 부정행위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최소한의 합리적 의심이 들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재판이 잘못됐다는 판단을 내놨다. 열람·등사 청구 이유가 타당·부당한지 입증할 책임은 청구를 한 주주가 아니라 청구를 받은 회사에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주주가 제출하는 열람·등사청구서에 붙인 '이유'는 회사가 열람·등사에 응할 의무의 존부를 판단하거나 열람·등사에 제공할 회계장부와 서류의 범위 등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경위와 목적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되면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더 나아가 그 이유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생기게 할 정도로 기재하거나 이유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첨부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주주가 열람·등사청구서에 '이유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생기게 할 정도로 기재해야 한다면, 회사 업무에 관한 적절한 정보가 없는 주주에게 과중한 부담을 줌으로써 주주의 권리를 크게 제한할 것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다만 "이유 기재 자체로 그 내용이 허위이거나 목적이 부당함이 명백한 경우에는 적법하게 이유를 붙였다고 볼 수 없다"며 "이런 열람·등사 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사건에 관해서는 "주주인 원고는 열람·등사 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와 목적 등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며 "경영진의 위반행위가 존재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 판결은 상법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