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값 급등·인력난에 시멘트도 끊겨…"주택공급까지 차질 우려"

물류 마비에 건설현장 셧다운

"본격적인 장마 오기 전에
콘크리트 타설 끝내야 하는데
레미콘 없어 개점휴업 상태"

주택공사 현장 60% 정도가
골조작업 마무리 못한 상태

공사 늦어지며 고정비용 눈덩이
중소 건설사 한계상황 내몰려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현장은 지난 10일 공사가 중단됐다. 대형 건설사인 A사가 시공 중인 이 현장은 3000여 가구의 대단지로, 최근까지 골조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전체 35층 중 22층에서 공사가 멈췄다. 레미콘 수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23층에는 철근만 세워져 있다. 현장 관계자는 “화물연대 파업이 몇 주만 지속돼도 공기 지연에 입주 차질로 이어져 파장이 클 것”이라며 걱정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 파업의 불똥이 건설현장으로 옮겨붙고 있다. 올 들어 원자재값 인상과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호소해 왔던 건설업계가 물류난까지 더해지는 3중고에 직면한 것이다.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시멘트 공급 차질에 따른 아파트 건설 중단으로 다시금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2000여 개 주택 현장 공사 중단될 듯

화물연대 파업으로 이번주 시멘트 공급이 막히면서 골조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현장부터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할 전망이다. 전국 3000여 곳 아파트,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 현장의 60%가량인 2000개 사업장이 대상이다.

장마가 오기 전 골조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건설업계는 화물연대 파업이라는 복병으로 비상 상황을 맞고 있다. 서울 강북의 한 재건축 현장 소장은 “장마 전까지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더없이 좋은 때인데 (화물연대 파업으로) 작업에 속도를 내기는커녕 공사 중단을 선언해야 할 판”이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일반적으로 아파트 공기는 3년 남짓이고 골조 공사가 60%가량을 차지한다. 건설업계가 물류난에 취약한 이유는 재고를 미리 쌓아둘 수 없는 레미콘(콘크리트)의 특성 때문이다. 레미콘은 굳지 않은 상태에서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를 통해 운반한 뒤 현장에서 바로 타설해야 한다. 1시간30분 내 타설하지 않으면 콘크리트는 곧바로 굳는다. 레미콘 공급이 지연되면 골조 공사 현장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여름철에는 골조를 더 빨리 올릴 수 있을 만큼 속도전을 낼 수 있는데 공사 대목에 일손을 놓으면 공기가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파업에 따른 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내부 마감재 공사가 덜 된 문제라면 하자보수 등의 작업에서 보완할 수 있지만 골조 공사 지연은 대안이 없다”며 “파업 기간에 공사가 중단되더라도 근로자들이 휴업 대기료(일당)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소 건설사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 중소 건설사 관계자는 “대기업 건설사는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 차주와 대체 작업으로 버티지만 작은 회사들은 그마저도 어렵다”고 했다.

장기화 땐 주택 공급 악영향

업계에서는 이번 파업이 지속될 경우 주택 공급 생태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철근, 레미콘, 벽돌, 알루미늄거푸집 등 대부분 건자재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10% 이상 오른 데다 공사비도 20%가량 뛰었다.건설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조차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자재값 인상에 공사장 인력난만으로도 버거운데 아예 자재가 들어오지 않는 물류난까지 겹치면서 3중고에 직면하게 됐다.

아파트 공사 중단은 입주 차질로 이어져 매매 및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건설현장에 악재가 겹겹이 쌓이면서 당장 올가을 정부가 발표할 표준형 건축비가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물류난이 지속되면 분양가 상승으로 전가돼 장기적으로는 주택 물량 부족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필/심은지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