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통령 암살 1년…지지부진한 수사 속 무법천지 '혼돈'

여전히 사건 진실 모호…갱단 범죄 급증 속에 엑소더스 계속
카리브해 빈국 아이티의 대통령이 암살당한 지 1년이 지났으나 아이티의 혼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잇단 용의자 체포에도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 혼란을 틈탄 갱단의 활동으로 치안은 극도로 악화했다.

◇ 용의자 40여 명 체포…진실은 여전히 미궁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사저에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진 것은 지난해 7월 7일(현지시간) 새벽이었다.

함께 있던 부인 마르틴 모이즈 여사도 총에 맞아 다쳤다. 괴한들은 비교적 빠르게 검거됐다.

콜롬비아 전직 군인 18명을 포함한 20여 명이 용의자로 체포됐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고용된 '용병'들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아이티 안팎에서 40여 명이 대통령 암살 사건과 관련해 붙잡혔다.

이중엔 '핵심' 용의자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모이즈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존 조엘 조제프 전 아이티 상원의원으로, 대통령 납치 또는 살해를 공모한 혐의로 지난 5월 미국서 기소됐다.
그를 포함해 총 3명이 미국서 기소되는 등 본국 아이티에서 지지부진한 수사가 대신 미국서 속도를 내는 모습도 보였지만, 누가 어떤 의도로 대통령 암살을 기획했는지 여전히 사건의 실체는 모호하다.

마르틴 모이즈 여사는 진짜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공석인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아리엘 앙리 총리도 지난달 트위터에 "대통령 암살을 기획하고 자금을 댄 이들은 여전히 우리 사법체계를 피해 도주 중이라는 불쾌한 느낌을 받는다"고 썼다.

◇ 선거 일정 불투명 속 대통령·국회 공백 계속
대통령 암살 이후의 정치적 혼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모이즈 대통령이 돌연 살해된 후 아이티는 대통령 업무를 누가 대행할지를 놓고 한차례 소용돌이가 일었다.

총선 연기로 국회는 공백 상태였고, 헌법상 대통령직 승계 대상인 대법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숨진 상태였으며, 대통령이 숨지기 직전 임명한 총리는 아직 취임 전이었기 때문이다.

취임을 앞뒀던 앙리 총리가 결국 국제사회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총리직을 맡게 됐지만, 대통령도 국회도 없는 상황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당초 9월 치르려던 대선·총선이 연기를 거듭해 2022년이 반환점을 돈 현재까지도 선거 일정을 잡지 못했다.

과도기를 책임져야 할 앙리 총리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앙리 총리가 모이즈 대통령 암살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나오면서 일부 갱단이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 혼란 속 갱단 활개…국민 엑소더스도 이어져
공권력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운 것은 아이티 갱단들이다.

극빈국 아이티는 이전에도 치안이 나쁜 편이었으나, 모이즈 대통령 암살 후의 혼돈 속에 갱단 범죄가 더 늘었다.

최근 유엔 발표에 따르면 아이티에선 하루 7건의 납치 사건이 보고되고 있다.

내·외국인, 부자와 가난한 이들을 가리지 않고 몸값을 노린 납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납치 사건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갱단들의 영역 다툼도 거세져 지난 4∼5월 포르토프랭스 북부에서의 갱단 전쟁으로 100명 넘는 민간인이 숨지고 수천 명이 피란을 떠나기도 했다.

갱단 장악 지역이 늘어나는데도 당국은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기댈 데 없는 주민들은 아이티 탈출을 택한다.

지난해 대통령 암살 직후 발생한 대지진도 엑소더스를 가속했다.

지난해 9월 미국 텍사스 국경에선 아이티 이민자 1만여 명이 난민촌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몇 년 전 남미 다른 나라로 이민했다 미국 재이민을 시도한 이들이었는데, 아이티에서 새로 이민을 감행하는 이들도 계속 늘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행 아이티 이민자 200여 명을 실은 배가 쿠바 해안에서 좌초하는 등 무모한 시도로 위험에 처하는 이들도 끊이지 않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