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까지 먼 대심도터널…쓰레기통 된 배수시설 정비 시급

빗물받이 막히면 적은 비에도 침수…급격히 규모 키운 강남은 배수체계 왜곡
도심 지하터널 공사 변수 많아…"경제성 높일 활용법 찾아야"
서울시가 근본적인 수해방지대책으로 대규모 지하 빗물저류배수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당장 들이닥칠 수해를 막으려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단위 비용이 들어가는 10년 이상 장기 공사가 마무리되기까지 터널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시내 배수 체계를 정비하고, 현장 관리를 강화하는 게 가장 시급한 대책으로 꼽힌다.

◇ 도시 발달 못 따라온 배수체계 정비 시급
11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향후 10년간 1조5천억원을 집중 투자해 강남역 등 서울 시내 6곳에 대규모 지하 빗물저류배수시설(대심도 터널)을 지을 계획이다.

그러나 배수체계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대심도 터널이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고속도로에 비유되는 대심도 터널까지 지선 도로를 잘 뚫어야 하는데 지선 도로에 해당하는 빗물받이 등 배수시설을 정비하지 않으면 적은 양의 비가 와도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침수 피해가 컸던 강남역의 경우 도로 빗물받이 부족이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파악된다.
최전방 수방시설로 꼽히는 빗물받이는 도로나 땅 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하수도로로 빼주는 시설로, 주로 도로나 인도 주변에 설치돼있다. 현재 서울 지역에 설치된 빗물받이는 약 55만7천개다.

빗물받이가 부족하거나 막혀 있으면 인근에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침수 원인이 된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를 모은 '강남 슈퍼맨'의 사례에서 보듯이 빗물받이에 모인 쓰레기민 치워줘도 침수를 늦출 수 있다. 그러나 강남 지역은 도로 규모보다 빗물받이가 적어 배수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연구원의 '서울시 노면 물고임 실태와 관리방안' 보고서(2018)에 따르면 2018년 1월 기준으로 도로 면적(㎢)당 빗물받이 개수는 강남구가 4천47개로 전체 25개 자치구 가운데 3번째로 적었다.

인근 서초구 역시 4천100개로 강남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빗물받이 관리 소홀도 문제로 꼽힌다.

담배꽁초 등 각종 쓰레기를 빗물받이에 버리거나 악취를 막기 위해 뚜껑을 덮어놓는 경우들이 적지 않은데 이 경우 침수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2010년 9월 강남역 침수 현장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한 결과 빗물받이 덮개의 3분의 2가 막히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침수 면적이 3.3배 더 넓었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지속해서 청소해오고 있지만, 지금보다 관리 예산을 더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더불어 배수체계 점검과 보완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특히 강남의 경우 대형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배수 체계에 왜곡이 생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1년 침수 피해 배경에도 삼성사옥 인근 배수관 시공 오류가 있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도로에 물이 고이면 안 된다"며 "강남의 경우 도시 발달에 따라 하수관로를 키워야 했는데 비용과 시간을 이유로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짚었다.

김동언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강남의 경우 지금 처리 능력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강우량을 소화 못 할 정도로 배수 체계가 엉망"이라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새로 건물을 지을 때 배수 시설을 잘 해야 했는데 건축주들이 물길을 좁히는 등 지하의 하수 체계를 왜곡했다"며 "강남 배수체계 전반에 대한 조사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 '비용과 시간과의 싸움' 대심도 터널 공사…"평시 활용법 찾아야"
대심도 터널 공사는 '비용과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심 곳곳에 대형 지하시설을 짓는 대규모 공사인 만큼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공사 기간과 비용이 언제든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신월동 빗물배수저류시설의 경우 2011년 계획 수립 당시 2015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2019년에야 주요 공사가 마무리돼 2020년부터 본격 가동하고 있다.

박원순 당시 시장이 대심도 터널에 부정적인 입장이라 사업에 속도가 안 붙은 점도 있지만, 향후 터널 공사가 강남역·광화문·용산 등 도심에서 진행되는 점을 고려하면 신월동보다 돌발 변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하철과 통신선 등이 이미 밀집해 있는 만큼 각종 설비 이설 등이 불가피할 수 있다.
공사비뿐 아니라 터널 완공 이후 관리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신월동 시설의 경우 공사비 1천390억원 외에 연간 유지보수 비용으로 6억원을 쓰고 있다.

그러나 기존 저류시설 30여곳의 용량이 한 곳당 1∼2만t에 불과한 데 비해 대심도 터널의 경우 수십만t에 달해 수해방지 효과를 고려하면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는 게 시의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대심도 터널의 경제성을 높이려면 도쿄 터널처럼 우기 때가 아닌 평시에도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쿄 지하에 있는 간다가와(神田川) 환상 7호선 대심도 터널은 빗물을 54만t까지 저장할 수 있는데 유사시에는 방공호로도 활용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대심도 터널 역시 평시에는 차로로 쓰인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원장은 "언제 올지 모를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데 대한 동의를 얻으려면 평소에 어떻게 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