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함께 발견한 삶과 음악…제천영화제 개막작 '소나타'

청각장애 극복한 뮤지션 실화…"음악과 장애, 모든 인간에 대한 이야기"
그제고시(미하우 시코르스키 분)는 조산아로 태어나 자폐 진단을 받았다. 유일한 취미는 집에 있는 낡고 고장난 피아노를 두드리는 일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살던 그제고시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 과거 자폐 진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고립은 자폐가 아닌 청각장애 때문이었다. 누군가 말을 걸면 '후후' 하는 소리만으로 반응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소리를 그저 진동으로 느끼던 그제고시는 인공 와우를 장착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또다른 새로운 세계는 음악이었다. 그제고시는 이제 피아노를 두드리는 대신 연주하게 된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독특했다.

그는 음표와 악보의 해석이 아닌,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할 때 나는 소리처럼 날것 그대로 음악을 이해했다.
11일부터 열리는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 개막작 '소나타'는 청각장애를 딛고 음악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실존인물 그제고시 푸온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그제고시는 콘서트홀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길 꿈꿨다.

음악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몇 차례 무산됐다.

레슨과 개인 연습으로 연주실력을 쌓은 그제고시는 청각장애인 음악제에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해 우승을 차지했다.

의사의 도움으로 그제고시가 태어나서 처음 소리를 듣게 된 장면에서는 사운드 효과로 인해 관객도 귀가 트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그제고시가 고립된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혼란과 충격, 음악을 향한 열정과 노력을 세밀하게 그린다.

역경을 극복하고 예술적 재능을 꽃피운 인물에 대한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경로를 택한다.

그제고시의 삶은 희망 속에서도 성공보다 실패가, 환희보다 좌절이 압도한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제 참석을 위해 방한한 바르토시 블라슈케 감독은 11일 메가박스 제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했다"며 "직접 만든 장면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소나타'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던 폴란드 출신 바르토시 블라슈케의 연출 데뷔작이다.

그는 "음악과 장애에 대한 이야기이자 모든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며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을 아우르는 주제도 보여줄 수 있어서 감독까지 맡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제고시를 이해하고 그의 진짜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며 그제고시를 연기하는 데 적합한 배우를 한동안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연기는 물론 피아노 실력도 갖추고 나이 역시 그제고시와 비슷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디션으로 캐스팅된 미하우 시코르스키는 "주연을 맡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실제 그제고시와 닮았기 때문이라고들 하더라. 영화의 영감이 된 인물과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며 웃었다.
그는 그제고시의 가족이 찍어둔 과거 영상을 통해 말투와 동작을 연습하고 그제고시를 직접 만나 대화하며 장애 연기를 준비했다.

미하우 시코르스키는 "그제고시와 이야기하며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빛을 느꼈을 때가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장애에 집중하지 않은 채 연기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람은 장애로만 정의할 수 없고 여러 특징이 있기 때문이에요.

말투나 동작뿐 아니라 생각과 감정, 성격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장애인을 연기할 때 장애에만 집중하는 것은 큰 덫입니다.

"
영화의 실제 모델인 그제고시 푸온카도 함께 방한했다.

그는 "월광 소나타를 듣자마자 연주를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며 "청각장애가 있었던 베토벤과 공감하며 연주할 수 있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7시 제천 의림지무대에서 열리는 영화제 개막식에서 베토벤 월광 소나타를 연주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