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 대중국 외교의 원칙으로 거론한 '화이부동(和而不同·조화를 이루되 같아지지 않는다)'에 대해 "(그것이) 군자의 사귐"이라며 호응했다. 12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 부장은 전날 중국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9일 진행한 박 장관과의 회담 내용을 소개하며 "한국 측은 공자의 화이부동을 인용하며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기초 위에 상호 존중과 호혜 협력의 새로운 비전을 열기를 희망했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이어 "화이부동은 군자의 사귐"이라며 "서로 다름을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실현한 조화(和)가 더 공고하면서 더 오래가고, 더욱 강인하면서도 더 따뜻한 조화"라고 부연했다.
박 장관은 지난 9일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국익과 원칙에 따라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중이 이견 속에서도 협력하자는 맥락에서 한중 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성어로 통용됐던 '구동존이(求同存異·일치를 추구하되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두는 것)'가 '화이부동'으로 대체될지 주목된다.
화이부동이 구동존이에 비해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인정을 좀 더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양국이 비약적 경제·인적 교류 성장을 이루면서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에서 보듯 체제와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서기 어려웠던 수교 이래 한중 관계 30년사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화이부동'에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장관의 화이부동 언급에 왕 부장이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양국이 이 성어를 통해 강조하고 싶어하는 바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는 게 중평이다.
한국은 '가치 외교'를 지향하며 체제가 다른 중국의 영향력 투사 시도를 견제하는 맥락에서 화이부동을 원하는 반면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 심화 속에 자국의 안보상 이해를 존중받길 희망하는 맥락에서 화이부동을 긍정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왕 부장은 회담에서 양국 수교 30주년에 연결해 '삼십이립(三十而立·서른이 되면 자립하고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다는 의미)'이라는 성어를 인용하면서 "비바람에 시련을 겪어온 중한 관계는 당연히 더 성숙하고 더 자주적이고 더 견고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이 삼십이립을 언급한 데는 한국이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대중국 외교 정책을 펴길 기대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