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대표 보수국가 우크라, 전쟁통에 여성 역할도 변모

여군 전방배치 늘고·지뢰 제거까지…'禁女 직종' 무너져
동유럽에서도 대표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로 꼽히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여파에 여성들의 역할도 변모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7일(현지시간) 조명했다.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전선 배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여성들은 중요한 '병력'의 일원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하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군에 자원입대한 여성은 5만 명을 넘었다.

말랴르 차관은 이 숫자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이후 많이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뢰제거 교육을 하거나 위장망을 제작하는 등 전선의 후방에서 여성의 역할도 커졌다.

마리우폴 출신 여성인 한나도 마찬가지다.

2년 전 스위스의 한 지뢰제거 관련 단체에 합류했던 그는 현재 최근 러시아가 퇴각한 체르니히우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뢰제거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우크라이나 사회에선 여성이 할 수 없었던 직종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가 2017년까지만 해도 소방관, 기관사, 용접공 등 450가지 직종을 여성이 일할 수 없는 직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성의 '생식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옛 소련 시절 남은 폐단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당 규정은 우크라이나 복지부가 2018년 금지 직종 지정을 정식 폐기하기로 하면서 사라졌다.
우크라이나 사회학자인 안나 크히트는 "일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은 매우 가부장적이었다"며 "올해 발발한 전쟁과 함께 여성의 활동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가시적으로 변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침공했을 이후부터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긴 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전투부대 배치는 금기시되는 등 여전히 고정관념과 싸워야 했다고 되짚었다.

안보 전문가인 영국 에버리스트위스대의 제니 마서스는 "여성이 하는 일에 대해 지속적인 사실 중 하나는 인식되진 않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라며 "분쟁 중에도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다수의 일은 여성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워낙 여성의 역할에 고정관념이 뿌리깊은 만큼 쉽사리 깨지진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크히트는 "우크라이나 사회에서는 군대와 전쟁은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저항감이 있었고, 아마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