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전 런던 금융 위기의 '교훈' [홍기훈의 슬기로운 금융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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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19세기 런던은 국제금융 자본시장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외국 채권이 활발하게 거래되었고 영국의 풍부한 잉여자금이 외국채에 투자돼 유동성을 공급해주었죠.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등 유럽 대륙의 전란으로 기업들은 안정적이고 자금이 풍부한 런던 시장에서 어음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런던 금융시장은 국제 금융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버랜드 가네상회 파산…금융위기 발발
중앙은행 '최종대부자 역할' 중요성 키워
런던에서 금융산업이 빠르게 발전하자 유럽 대륙 기업들은 자본이 풍부한 영국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파운드화로 표시된 어음을 런던에서 발행했습니다. 이때 할인된 가격에 기업의 어음을 매입해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어음 할인업자들이 판을 쳤는데, 이는 향후 발생하는 거대한 문제의 시발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국가 간 자본 이동이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정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1866년 5월 오버랜드 가네상회(Overend Gurney)라는 런던의 대형 어음 할인업자는 파산하고 맙니다.오버랜드 가네상회는 1800년 설립된 조직이었습니다. 설립 이후 단기 자금 융통에 집중했고 1825년 발생한 금융위기에서 다른 은행들의 채권을 공매도해 큰돈을 벌어들이기도 했습니다. 1807년에 입사해 1809년에 경영진에 참여한 사무엘 가네(Samuel Gurney)는 상회를 당시 영국에서 가장 큰 어음할인업자로 키웠죠. 이후 1856년 사무엘 가네가 사망하자 상회는 철도 산업을 비롯한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합니다. 그 결과 1860년대 초 자산 100만파운드에 부채가 400만파운드에 달하는 유동성 문제에 직면하고 말죠.
오버랜드 가네상회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1865년 7월 유한회사로 조직을 바꾸면서 당시 15파운드였던 자신의 주식을 주당 24파운드에 판매합니다. 추가자본을 조달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1865년 영국의 신용시장이 경직되면서 주식과 채권시장이 폭락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맙니다. 결국 철도산업 주식이 큰 피해를 보면서 유동성 문제는 다시 불거졌고 결국 상회는 발행권을 보유한 영란은행에 대출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영란은행은 상회의 신용도가 너무 낮음을 이유로 대출을 거절합니다. 이에 상회는 1866년 5월 10일 모든 지급을 중지하고 1866년 6월 결국 파산하고 맙니다. 그 영향으로 런던에서는 금리가 10%까지 상승하면서 금융위기가 발발합니다. 은행을 포함한 200여개 기업이 파산하는 결과를 가져오죠. 1866년 금융위기는 발권력을 가진 영란은행, 즉 중앙은행 최종대부자 기능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최종대부자 기능이란 금융시장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종적으로 자금을 공급해 주는 기관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런던 금융위기 발발로 한 금융기관의 파산이 금융기관 연쇄 도산을 일으켜 국민경제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오는 것을 막을만한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이 대두되게 되죠. 이후부터 중앙은행이 은행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충분한 자금을 공급해 줌으로써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안정시키고 위기의 확산을 방지하여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는 역할의 중요성이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대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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