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에 대한 일침…신간 '섹스할 권리'
입력
수정
대학 중퇴자 엘리엇 로저는 2014년 5월 23일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는 한집에 살던 친구 등 3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어 인근 여학생 사교 클럽으로 차를 몰고 가 여성 3명을 총으로 쐈고, 식품점 안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총을 난사했다.
그는 친구를 죽이고 나서 '엘리엇 로저의 응징'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영상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쫓겨나고 거부당했으며 홀로 내던져졌다.
이건 모두 여자라는 인간 종이 내가 가진 가치를 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
로저는 속칭 '인셀', 즉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에게 섹스할 권리가 있지만, 여성들이 이를 박탈했다고 생각했다.
그를 '멍청이'라고, '동정'이라고 놀렸던 이들은 늘 남자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섹스를 박탈한 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이었고, 따라서 로저에게 여자들은 궤멸해야할 존재였다. 영국의 스타 철학자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최근 번역돼 출간된 에세이 '섹스할 권리'(창비)에서 "어떤 여성도 로저와 성관계를 가질 의무가 없다"며 "자신에게 섹스할 권리가 있다는 그의 생각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연구 사례가 될 만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로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은 극소수가 아니었다.
로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인터넷 사이트에는 로저의 행위를 옹호하는 글이 잇달았다.
'굶주린 남성이 음식을 훔쳤다고 해서 꼭 감옥에 가야 하는 건 아니듯, 성적으로 굶주린 남성이 여성을 강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대표적이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역겹고 말도 안 되는 비유인데다, 가부장제의 핵심에 있는 폭력적이고 잘못된 생각을 여실히 드러내는 글"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그 불행이 욕망을 빚어내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본인들과의 섹스를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 순간 이들은 선을 넘어 도덕적으로 추악하고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섹스와 관련한 페미니즘 운동의 개괄적인 역사도 담겼다.
1960년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섹스에 대한 왜곡과 가부장제의 연관성을 강하게 비판했고, 1970년대에는 자본가의 착취에 대항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좌파 성향의 남성들과 한때 동맹을 맺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성적 선택의 자율성에 운동의 방점을 뒀다.
저자는 "성적 선택이 자유로워야 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가부장제 아래에서 이러한 선택이 좀처럼 자유롭지 않은 이유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섹스할 권리'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리니바산의 책이다.
그는 여성·비백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올솔스 칼리지 사회정치이론 치첼리 석좌교수 자리에 올랐다.
인식론·형이상학·정치철학·페미니즘을 주로 연구한다.
책에는 '섹스할 권리' 외에 '누가 남성을 음해하는가', '포르노를 말한다', '욕망의 정치', '학생과 잠자리하지 않기', '섹스, 투옥주의, 자본주의' 등 여섯 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김수민 옮김. 392쪽. 2만2천원.
/연합뉴스
그는 한집에 살던 친구 등 3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어 인근 여학생 사교 클럽으로 차를 몰고 가 여성 3명을 총으로 쐈고, 식품점 안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총을 난사했다.
그는 친구를 죽이고 나서 '엘리엇 로저의 응징'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영상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쫓겨나고 거부당했으며 홀로 내던져졌다.
이건 모두 여자라는 인간 종이 내가 가진 가치를 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
로저는 속칭 '인셀', 즉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에게 섹스할 권리가 있지만, 여성들이 이를 박탈했다고 생각했다.
그를 '멍청이'라고, '동정'이라고 놀렸던 이들은 늘 남자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섹스를 박탈한 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이었고, 따라서 로저에게 여자들은 궤멸해야할 존재였다. 영국의 스타 철학자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최근 번역돼 출간된 에세이 '섹스할 권리'(창비)에서 "어떤 여성도 로저와 성관계를 가질 의무가 없다"며 "자신에게 섹스할 권리가 있다는 그의 생각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연구 사례가 될 만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로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은 극소수가 아니었다.
로저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인터넷 사이트에는 로저의 행위를 옹호하는 글이 잇달았다.
'굶주린 남성이 음식을 훔쳤다고 해서 꼭 감옥에 가야 하는 건 아니듯, 성적으로 굶주린 남성이 여성을 강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대표적이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역겹고 말도 안 되는 비유인데다, 가부장제의 핵심에 있는 폭력적이고 잘못된 생각을 여실히 드러내는 글"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그 불행이 욕망을 빚어내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본인들과의 섹스를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 순간 이들은 선을 넘어 도덕적으로 추악하고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섹스와 관련한 페미니즘 운동의 개괄적인 역사도 담겼다.
1960년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섹스에 대한 왜곡과 가부장제의 연관성을 강하게 비판했고, 1970년대에는 자본가의 착취에 대항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좌파 성향의 남성들과 한때 동맹을 맺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성적 선택의 자율성에 운동의 방점을 뒀다.
저자는 "성적 선택이 자유로워야 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가부장제 아래에서 이러한 선택이 좀처럼 자유롭지 않은 이유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섹스할 권리'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리니바산의 책이다.
그는 여성·비백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올솔스 칼리지 사회정치이론 치첼리 석좌교수 자리에 올랐다.
인식론·형이상학·정치철학·페미니즘을 주로 연구한다.
책에는 '섹스할 권리' 외에 '누가 남성을 음해하는가', '포르노를 말한다', '욕망의 정치', '학생과 잠자리하지 않기', '섹스, 투옥주의, 자본주의' 등 여섯 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김수민 옮김. 392쪽. 2만2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