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과 신중함의 원칙'으로 16년간 독일을 이끈 여성

메르켈 전 독일 총리 평전 '앙겔라 메르켈'
독일을 16년간 이끌고 지난해 12월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어린 시절 일화가 있다. 그는 학창 시절 3m 높이 스프링보드에 서서 계속 망설이다가 체육 시간 종료종이 울리는 순간 끝내 뛰어내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메르켈의 통치 원칙이었던 '망설임과 신중함의 원칙'을 상징하는 일화로 제시된다.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자신이 원하는 바나 어떤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다리고 침묵하고 관찰하다가 마지막 순간 행동하는 메르켈을 보여주는 일화다. 독일 언론인 우르줄러 바이덴펠트는 신간 '앙겔라 메르켈'(사람의집)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며 이 원칙은 메르켈 총리의 가장 큰 약점인 동시에 메르켈 집권기의 역사적 전환점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평전 형식의 이 책은 연대별로, 때로는 주제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일반적인 정치인의 이미지와는 다른 메르켈의 면모를 살핀다.

책에 따르면 메르켈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총리였다. 정치인 중에는 어떻게든 자신을 강하게 부각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메르켈은 갈등 상황에서도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태도에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동독 출신이라는 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메르켈을 두고 독일 뒤스부르크대의 정치학자 코르테는 "영웅적 면모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특별한 것이 없는 것 자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책은 이런 메르켈의 태도가 그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데 한몫했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을 안긴 원인이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재임 16년간 독일을 둘러싸고 발생한 굵직한 사건들에서 이런 태도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때 독일의 태도를 두고 난민을 포용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저자는 당시 독일 국경은 연 것이 아니라 그냥 폐쇄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2010년 그리스의 부채 위기에서 시작된 유로존 분열 위기에서는 결국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류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러기까지 2년 동안 메르켈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메르켈의 성공에 관한 역사적 평가는 시간이 지나야 한다면서도 그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에는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정치 경험이 없는 무명인이 정계 입문 15년 만에 정부 수반이 된 것도 이례적이고, 여성이 그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전례가 없다.

메르켈이 그것을 해냈다.

같은 세대 서독 여성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을.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그녀의 정치 역정은 한 시대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하다. "
박종대 옮김. 376쪽. 2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