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못간 예비군, 내년에 두번 가라?
입력
수정
지면A27
국방부, 코로나로 정원 축소지난 17일 고모씨(28)는 최근 소속 예비군 부대로부터 황당한 말을 들었다. 독감에 걸려 1차 예비군 훈련을 미뤘다가 추가 훈련을 받으려고 했더니 “자리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씨는 “훈련을 미룰 때만 해도 새 일정을 잡아주겠다고 안내했는데, 이제 와서 내년에 훈련을 두 번 받으라고 통보하니 어이가 없다”며 허탈해했다.
2년 만에 재개했지만 장소 부족
수십만명에 안내 않고 강제 연기
제주·부산으로 '원정 훈련' 신청도
예비군들이 훈련을 받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훈련장이 부족해서다.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2년여 만에 훈련이 재개됐지만 국방부가 감염 확산을 우려해 그동안 훈련 정원을 최대 50% 줄였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해당 사실이 뒤늦게 예비군들 사이에 퍼지면서 일부는 훈련 정원에 여유가 있는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는 ‘원정 훈련’에까지 나서고 있다.23일 국방부에 따르면 올해에만 수십만 명의 예비군이 원하는 때에 훈련을 받지 못할 전망이다. 서울 지역에서만 올해 2차 추가 훈련을 받아야 하는 예비군이 2만1377명이다. 전국적으로 추산하면 엄청난 인원이 추가 예비군 훈련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국방부는 그러나 예비군을 대상으로 올해 추가 훈련이 어렵다는 안내조차 하지 않았다. 예비군 훈련장 자리가 부족해 발생하는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추가 훈련이 불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역 중대에는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한 예비군 중대장은 “하루에 수십 통씩 예비군 관련 문의가 쏟아졌다”며 “훈련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제주도, 부산까지 훈련 신청을 하는 예비군도 있다”고 말했다. 예비군 관리 당국은 직장 출근 및 사업 등을 이유로 부득이 훈련받지 못하는 예비군을 위해 원하는 지역에서 훈련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마감돼 자리가 없는 상태다.
부산, 제주 등 300~400㎞ 떨어진 지역까지 원정을 떠날 수밖에 없는 건 내년으로 훈련이 미뤄지면 생업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면 지금까지 축소 운영했던 예비군 훈련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5~6년 차 예비군의 경우 내년엔 기본 훈련 8시간, 작계훈련 12시간 등 총 20시간의 훈련을 이수해야 한다. 코로나를 감안해 올해 12시간으로 축소된 훈련을 못 받으면 내년엔 총 32시간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사나흘은 꼼짝없이 훈련에만 매달려야 하는 시간이다. 서울에 사는 자영업자 신모씨(27)는 지난달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강원도까지 갔다. 그는 “예비군 훈련 때문에 며칠씩이나 가게를 닫아야 할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고 말했다.아예 휴일 예비군 훈련을 신청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휴일 예비군 훈련은 올해 12월까지 육군 기준 총 58회 계획돼 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군사적 긴장감이 돌고 있는 와중에 예비군 훈련 일정까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도 현역 병사가 갈수록 줄고 있어 해외 선진국처럼 예비군을 중심으로 한 정밀한 군사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