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 총리' 트러스, 참담한 실책으로 영국 최단명 불명예 퇴진

감세안으로 영국 경제위기 앞당겨…잇단 정책 유턴에도 신뢰회복 실패
'제2의 철의여인' 꿈꿨으나 "오래 버티기에서 양상추에 졌다" 조롱
'제2의 철의 여인 대처'를 꿈꾸던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 7주 만에 물러나며 영국 역사상 최단명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이 24일(현지시간) 차기 보수당 대표 및 총리로 결정됨에 따라 트러스 총리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트러스 총리는 9월 6일 영국 세 번째 여성 총리로 취임했으나 한 달도 안 돼서 '좀비 총리'로 불렸고 두 달도 안 된 10월 20일 사임을 발표했다.

그의 사임은 시간문제일 뿐이란 전망이 나오던 중에 한 영국 대중지는 선반에 둔 양상추와 트러스 총리 중에 어느 쪽이 오래가는지 보자며 영상을 올렸고, 결국 그는 양상추에 졌다고 조롱을 당했다. 그는 영국 역사상 최단기 재임한 총리로 남게 됐다.

직전 기록은 1827년 취임 119일 만에 사망한 조지 캐닝 총리다.

그는 보수당 당 대표 선거에서 감세를 통한 성장을 내세워서 수낵 내정자를 제치고 승리했다. 원내 경선에선 2위였지만 밑바닥 당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수낵 내정자 측에서 그의 정책을 두고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비판했지만 보수당원들은 달콤한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는 취임 일성에서 "함께 폭풍우를 헤치고 경제를 재건하고 현대 멋진 영국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감세와 개혁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킬 담대한 계획이 있다"고 외쳤다. 이후 9월 23일 50년 만에 최대 규모 감세안이 담긴 미니예산을 발표했다.

취임 이틀 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서서 급하게 내놓은 것이지만 설익은 정책의 대가는 혹독했다.

긴축이 필요한 시기에 재정 손실을 메울 대책 없이 나온 대규모 감세안은 유례없이 재정전망도 수반되지 않아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파운드화 가치는 역대 최저로 추락하고 금리는 급등했다.

이후 그는 부자 감세와 법인세율 동결을 잇달아 거둬들이며 정책 유턴을 하고 정치 동지인 쿼지 콰텡 전 재무장관을 내치기까지 했으나 이미 신뢰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이례적으로 정책 부작용을 경고하고 영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가 나오는 등 세계적으로도 망신을 샀다.

영국이 이미 경기침체로 접어들고 있는데 트러스가 이를 가속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잘못된 리더는 경제규모 세계 6위에 준기축통화국인 영국 같은 나라도 순식간에 위기로 몰고 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새로 기용한 제러미 헌트 장관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트러스 총리의 정책을 모두 뒤집으면서 트러스 총리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더욱 빗발쳤다.

트러스 총리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각에 경쟁자인 수낵 내정자 측 인사는 모조리 제외하면서 당 분열을 더 심화시키고 당장 자신의 입지도 위축시킨 탓이다.

그는 19일 의회에서 자신은 싸우는 사람이지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24시간도 안 돼서 사임 발표를 했다.

보수당 의원들의 여론이 걷잡을 수 없으며 불신임투표로 내쫓기기 전에 나가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1분 30초짜리 사임 발표는 끝까지 싸늘한 평가를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