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들도 "돈 없다"…증권사 유동성 지원 해법 골머리

증권사들, '제2 채안펀드' 조성해 ABCP 매입안 반발…'셀프매입'도 난색
증권업계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관련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고자 연일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좀처럼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관건은 대형 증권사들의 자금 여력이지만, 가뜩이나 금리 상승과 증시 부진으로 각종 수익이 감소하며 어려움을 겪는 터라 좀처럼 중지가 모이지 않는 상황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24일과 이날 주요 증권사들을 소집해 최근 우려가 불거진 중소형사들의 PF ABCP 유동성 위기 해소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지난 23일 자금시장 관련 현황 점검회의에서 "정부의 재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정부'가 축적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서로가 수시로 소통하면서 시장안정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함에 따라 업계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의에서 거론된 방안 중 하나는 이른바 '제2의 채안펀드'였다.

대형 증권사들이 주축이 돼 각사별로 500억∼1천500억원 정도를 갹출해 최대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 중소형사를 지원하자는 방안이다.

구체적인 지원 방식까지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중소형사들이 신용 보강한 PF ABCP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이 유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대형사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최근 금리 상승에 따른 채권 운용 손실 급증과 증시 부진에 따른 각종 수수료 수익 감소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건 대형사도 예외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중소형사의 리스크를 이런 방식으로 떠안는 것은 배임이 될 수 있다는 강도 높은 반발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강원도 레고랜드 PF ABCP 사태가 회사채 시장 경색을 악화시켰다는 인식 속에 지자체의 책임을 업계에 돌리려 한다는 심리적 반발심도 큰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서는 대형 증권사들이 자신들이 신용 보강한 PF ABCP를 자체 자금으로 매입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유통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는 대형사들의 PF ABCP를 셀프 매입해 시장에서 물건을 거둬들이고, 대신 중소형사들의 PF ABCP에 수요를 몰아주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방식에 대해서도 대형사들은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가 PF ABCP 물량을 떠안게 되면 이를 다른 기관 투자자들에게 재매각(셀다운)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기관들도 자금이 부족해 매입이 어렵다.

이럴 경우 증권사는 해당 물량을 만기까지 보유해야 하는데 금리 인상기에 채권 평가 손실액이 커질 수 있어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이런 방식은 중소형사뿐만 아니라 대형사들도 다 같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라는 것"이라며 "유통시킬 수 있는 PF ABCP를 굳이 회삿돈으로 사들여 손해를 끼치는 것 역시 배임"이라고 반발했다.

다만 업계가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자구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이날 오후 증권사 최고재무책임자(CFO) 간담회 개최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증권업계도 담보가 우량한 ABCP나 정상 CP는 최대한 자본시장 내에서 흡수함으로써 정상적인 단기자금 시장 기능을 조속히 복원하고 시장심리 안정에도 기여할 방안을 자율적으로 모색해 시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