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공예의 정수'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국보된다

문화재청, 지정예고…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역사·문화적 가치 커
항일 투쟁 다짐한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6건은 보물 지정예고
백제시대 공예품의 정수이자 전북 익산 미륵사 창건의 역사적 사실을 밝힌 것으로 평가받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가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2018년 6월 보물로 지정됐던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보로 지정한다고 31일 예고했다.

사리장엄구는 사리를 불탑에 안치할 때 사용하는 용기나 함께 봉안되는 공양물을 일컫는다.

이 유물은 2009년 서탑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인 심주석(心柱石)의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넣으려고 마련한 구멍)과 기단부에서 나온 금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와 사리호, 청동합 등 총 9점으로 돼 있다. 얇은 금판으로 만든 사리봉영기는 앞·뒤 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字)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己亥年·639)에 사리를 봉안했다는 내용이 있어 발견 당시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미륵사를 창건한 주체는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이자 신라 진평왕 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라고 돼 있으나, 사리봉영기에는 왕후가 사택적덕 딸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 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힌 계기가 돼 사리장엄구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석탑에서 나온 금동사리외호와 금제 사리내호는 모두 몸체의 허리를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이 뛰어나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동합은 크기가 각기 다른 6점으로 구성됐으며 그중 하나에는 '달솔(達率) 목근(目近)'이라는 명문이 있다.

달솔은 벼슬 명칭으로, 달솔 벼슬의 '목근'이라는 인물이 시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재청은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된 이 사리장엄구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 봤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7세기 전반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해주는 한편, 동아시아 사리 공예품의 대외 교류를 밝혀주는 자료로써 역사·학술·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므로 국보로 지정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이봉창 의사 선서문'을 비롯한 문화재 6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이 선서문은 이봉창 의사(1900∼1932)가 1931년 12월 13일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한인애국단의 제1호 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일본에 대한 항쟁을 다짐하며 작성한 것이다.

당시 서명을 마친 이봉창 의사는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선서문을 가슴에 단 채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서문은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돼)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고 돼 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 행적과 활동 등을 증명하는 주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밖에 11∼12세기에 만들어진 불교 경전인 '초조본 유가사지론(初雕本 瑜伽師地論) 권66'·'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권88',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도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됐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공개된 판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농업 서적 '사시찬요'(四時纂要), 경주손씨의 후손 손소(1433∼1484)가 하사받은 '손소 적개공신교서'(孫昭 敵愾功臣敎書)도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 및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안동권씨 충재종택에 있는 정자인 '봉화 청암정(靑巖亭)'과 '영주 부석사 안양루(安養樓)', '영주 부석사 범종각(梵鐘閣)' 등 3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