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후 최대 소모전"…무기·탄약 생산 불똥 떨어진 서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10개월째 지속되면서 서방이 무기와 탄약 소모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미 미사일 고갈 징후를 다각도로 드러내 보인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세계 최강 군사대국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서방 진영조차 예상치 못한 소모전을 맞아 군사물자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NYT는 "양측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볼 수 없었던 속도로 무기와 탄약을 불사르고 있다"며 "탄약을 얼마나 쏟아부을 수 있느냐가 우크라이나 항전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쟁 초기에만 해도 서방에서는 '분재 군대'라고 불릴 정도로 비교적 소규모인 우크라이나군이 얼마만큼의 화력을 사용할지를 두고 여유 있는 전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전쟁을 지켜본 나토 인사들은 사용되는 포탄이 어마어마한 분량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나토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여름 러시아가 장악한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매일 6천∼7천 발의 포격을 가했고, 러시아군도 하루 4만∼5만 발을 쏟아부었다.

이는 미국의 한 달 생산량인 1만5천 발로는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의 국방 전문가인 카미유 그랑은 "우크라이나에서의 하루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한 달 이상"이라고 표현했다. 제한된 탄약 재고와 생산량으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충분히 지원하기가 점점 더 버거워지는 것이다.
또,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북한 견제 필요성이 여전한 만큼 대만과 한국에 집중된 전력을 전용해오기도 쉽지 않다.

이에 서방은 고가의 방공 미사일과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을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사용할 수 있는 S-300 대공미사일과 T-72 탱크 등 구소련제 무기를 찾아 나서는가 하면, 체코와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의 군사 공장을 재가동해 소련 시절 사용됐던 152㎜ 혹은 122㎜ 포탄을 다시 생산하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로 보내지는 포탄 재고를 보충하기 위해 한국에서 탄약을 사 오는 방안도 시도하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최근 한국과 155㎜ 포탄 매입 계약에 합의했다는 보도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쟁지역과 관련한 살상무기 거래를 제한하는 각국 규제 등으로 인해 수급 노력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자국산 대공화기를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판매하는 것을 불허했고, 이탈리아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

나토가 회원국들로부터 향후 재정적 지원을 끌어오기도 쉽지만은 않다.

최근 나토는 2024년까지 방위비를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유럽연합(EU) 내 18% 국가만이 지출에 협력적이었을 뿐 대부분 회원국은 냉랭한 반응이라고 한다.

EU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조성한 유럽평화기금(EPF)도 이미 90%가 고갈된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사거리가 약 190㎞로 러시아 본토 타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등 최소 4가지 이상의 추가적인 군사 시스템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NYT는 내다봤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이 '맥가이버 군대'라고 불릴 정도로 창의적이고 즉흥적으로 가용 자원을 임시변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희망적으로 평가된다고 NYT는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본토 남쪽 끝에서 약 48㎞ 떨어진 흑해 서북부 요충지인 뱀섬을 러시아군에게서 되찾는 과정에서 사거리 40㎞의 세자르 자주포를 바지선에 실어 해상에서 포격을 가하는 수법으로 사거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개전 초기 러시아 최강 전함으로 불리던 모스크바함을 우크라이나군이 자체 개조한 미사일로 격침한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NYT는 "미국이 좀 더 오래되고 저렴한 대안 무기를 찾아 나서고 있다"며 "2만 달러짜리 드론을 격추하는 데에 15만 달러짜리 미사일을 쏘지는 말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