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용산서장, 21분 후 첫 인력동원 지시(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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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36분께 무전망에 "이태원으로 전부 보내라"
참사 인지 시점 국회 증언한 오후 11시께보다 이를 수도
무전상 'CPR' 첫 언급은 오후 10시59분 기록 이임재(53) 전 용산경찰서장이 이태원 참사 당일 오후 10시 36분에 처음으로 인력 동원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가 발생한 시각으로 추정되는 오후 10시 15분에서 21분이 지난 시점이다.
이 전 서장은 국회에서 참사 인지 시점을 오후 11시께라고 증언한 바 있는데 그보다 최소 24분 전 상황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9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용산경찰서 112 무전 기록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35분 "용산, 용산서장"이라고 외치며 무전망에 처음 등장한다. 이어 오후 10시 36분에 "이태원(으로) 동원 가용사항, 형사1팀부터 여타 교통경찰관까지 전부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에 앞서 오후 10시 19분 참사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무전을 통해 "이태원파출소, 여기 이태원 해밀턴 옆 사람이 깔렸다는 신고"라며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알렸다.
경찰 112 무전망 통신 내용은 서장을 포함해 소속 과장급 이상 경찰과 관할 지구대와 파출소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전 서장이 오후 10시 36분 이전에 무전망으로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정황은 이 전 서장의 그간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는 이달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참사 상황을 알게 된 시점이 오후 11시께"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가 참사 현장에 도착한 시점은 오후 11시 6분께로 알려져 있다. 다만 무전 기록을 보면 이 전 서장의 인력 동원 지시 후에도 현장 경찰관들이 한동안 사상자 발생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
오후 10시 59분 용산서 교통센터에서 용산서 112상황실로 "교통경찰관이 지금 보고하기로는 60명 정도 심폐소생술(CPR) 중"이라고 알렸는데, 1분 뒤 112상황실이 교통센터에 "60명이 CPR 중?"이라고 되물은 기록이 있다.
이런 반응은 112상황실에서 그전까지 사상자 발생 사실을 몰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전 서장이 CPR 환자 발생 사실이 전파된 뒤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있다.
이 전 서장은 오후 11시 9분에야 "지원된 모든 근무자들은 해밀톤 호텔 골목에서 차도 쪽으로 인파를 밀어내라"고 지시했다.
이는 오후 11시 6분 그가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해 옥상에서 참사 현장을 본 뒤 내린 첫 지시였다.
이 전 서장이 참사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지한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이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본인 주장과 달리 오후 10시 36분에 이미 상황을 인지했다면 참사 사실을 알고도 희생자 생명과 직결되는 구호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으로 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소명될 수 있다는 게 특수본의 판단이다.
여기에 더해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의 두 차례 피의자 신문 내용과 관련 증거 등을 검토해 이번 주 내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전 서장이 참사 전 서울경찰청에 기동대를 요청했다는 주장도 위증 의혹에 휩싸여있다.
그는 16일 국회 행안위에서 "112상황실장이 서울청 주무 부서에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다"며 "서울청이 (참사) 당일 집회·시위가 많아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이 왔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경찰 특수본은 아직 이 전 서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진술이나 자료가 없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참사 인지 시점 국회 증언한 오후 11시께보다 이를 수도
무전상 'CPR' 첫 언급은 오후 10시59분 기록 이임재(53) 전 용산경찰서장이 이태원 참사 당일 오후 10시 36분에 처음으로 인력 동원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가 발생한 시각으로 추정되는 오후 10시 15분에서 21분이 지난 시점이다.
이 전 서장은 국회에서 참사 인지 시점을 오후 11시께라고 증언한 바 있는데 그보다 최소 24분 전 상황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9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용산경찰서 112 무전 기록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35분 "용산, 용산서장"이라고 외치며 무전망에 처음 등장한다. 이어 오후 10시 36분에 "이태원(으로) 동원 가용사항, 형사1팀부터 여타 교통경찰관까지 전부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에 앞서 오후 10시 19분 참사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무전을 통해 "이태원파출소, 여기 이태원 해밀턴 옆 사람이 깔렸다는 신고"라며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알렸다.
경찰 112 무전망 통신 내용은 서장을 포함해 소속 과장급 이상 경찰과 관할 지구대와 파출소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 전 서장이 오후 10시 36분 이전에 무전망으로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정황은 이 전 서장의 그간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는 이달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참사 상황을 알게 된 시점이 오후 11시께"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가 참사 현장에 도착한 시점은 오후 11시 6분께로 알려져 있다. 다만 무전 기록을 보면 이 전 서장의 인력 동원 지시 후에도 현장 경찰관들이 한동안 사상자 발생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
오후 10시 59분 용산서 교통센터에서 용산서 112상황실로 "교통경찰관이 지금 보고하기로는 60명 정도 심폐소생술(CPR) 중"이라고 알렸는데, 1분 뒤 112상황실이 교통센터에 "60명이 CPR 중?"이라고 되물은 기록이 있다.
이런 반응은 112상황실에서 그전까지 사상자 발생 사실을 몰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전 서장이 CPR 환자 발생 사실이 전파된 뒤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있다.
이 전 서장은 오후 11시 9분에야 "지원된 모든 근무자들은 해밀톤 호텔 골목에서 차도 쪽으로 인파를 밀어내라"고 지시했다.
이는 오후 11시 6분 그가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해 옥상에서 참사 현장을 본 뒤 내린 첫 지시였다.
이 전 서장이 참사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지한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이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본인 주장과 달리 오후 10시 36분에 이미 상황을 인지했다면 참사 사실을 알고도 희생자 생명과 직결되는 구호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으로 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소명될 수 있다는 게 특수본의 판단이다.
여기에 더해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의 두 차례 피의자 신문 내용과 관련 증거 등을 검토해 이번 주 내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전 서장이 참사 전 서울경찰청에 기동대를 요청했다는 주장도 위증 의혹에 휩싸여있다.
그는 16일 국회 행안위에서 "112상황실장이 서울청 주무 부서에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다"며 "서울청이 (참사) 당일 집회·시위가 많아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이 왔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경찰 특수본은 아직 이 전 서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진술이나 자료가 없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