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부, 사법부권한 대폭 약화 '개혁안' 공개…야권 반발

대법원 위헌결정도 의회에서 무력화 가능…"민주주의 약화" 우려
"네타냐후 뇌물재판·'탈세전과' 부총리 적법성심사 무력화 의도" 관측도
권좌에 복귀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연립정부가 대법원 등의 권한을 대폭 약화하는 사법부 개혁안을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AP·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은 4일(현지시간) 크네세트(이스라엘의 단원제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부를 개혁하는 방안을 담은 제안을 공개했다.

개혁안에는 대법원이 내린 위헌 결정을 크네세트의 단순과반 의결(120표 중 61표)만으로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이스라엘의 연성헌법인 '기본법'에 대한 대법원의 사법심사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대법관을 임명하는 위원회에서 크네세트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비중을 늘리는 내용과, 각 부처 법률고문에 독립적 전문가들을 임명해야 한다는 제한을 폐지해 장관이 법률고문을 뜻대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오래 전부터 대법원 권한 약화를 주장해 온 레빈 장관은 "(국민에 의해) 선거로 뽑히지 않은 자들(법관들)이 행사해 온 권한을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에게 되돌려 주려는 것"이라며 "이제 행동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20년간 이 개혁안을 구상해 왔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는 내용뿐만 아니라 시점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네타냐후 연립정부가 탈세 전과자를 장관에 임명한 것이 정당한지에 관한 대법원 심리를 하루 앞두고 나왔기 때문이다.
근본주의 유대교 정당인 '샤스'의 아리예흐 데리 대표는 현 내각에서 부총리 겸 보건부 장관,내무부 장관을 맡고 있다.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전과자는 장관이 될 수 없다는 법 조항이 최근까지 있었으나, 네타냐후가 주도하는 우파 연합이 작년 말에 법률을 개정해 이 부분을 없앴다. 레빈 장관은 이번 사법부 개혁안 발표가 데리의 각료직 임명에 대한 대법원 심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네타냐후 총리가 뇌물수수와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점과도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레빈 장관이 사법부 개혁안을 발표하기 몇 시간 전에 갈리 바하라브-미아라 검찰총장은 데리의 각료직 임명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바하라브-미아라 검찰총장은 네타냐후 정부가 들어선 후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레빈의 사법부 개혁안은 "극우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연립정부에 절대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예루살렘 소재 싱크탱크 '민주주의 연구소'의 아미르 푹스 선임연구원은 이번 개혁안이 통과되면 정부가 절대 권력을 손에 넣게 돼 성소수자와 난민의 인권에서부터 선거와 언론자유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이를 휘두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스라엘 영자지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보호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던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에 조종(弔鐘·죽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이스라엘에 공식적 경성헌법이 없고 연성헌법인 기본법만 있으며 이는 크네세트에서 단순 과반수를 확보한 정치세력이 마음대로 개정할 수 있는 까닭에 대법원의 사법심사는 폭정을 막는 유일한 보호장치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작년 말 총리직에서 물러나 야권 지도자가 된 야이르 라피드 의원은 이번 개혁안 발표를 '일방적 쿠데타'이자 '이스라엘의 전체 헌법구조를 파괴하겠다는 협박장'이라고 비판하면서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