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앞둔 원로연출가 김우옥 "젊은이들 열광해 깜짝 놀라"

한예종 연극원 초대 원장 지낸 연극계 '산 증인'…작년 실험극 '겹괴기담' 호평
원로 연극인축제 '늘푸른연극제' 국립정동극장세실서 세 편 잇달아 공연
"늘푸른연극제는 젊음을 제게 새로 갖다준 기회였어요. 그 덕택에 이렇게 늙은 사람이 연출도 맡게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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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연출가 김우옥(89)은 9일 '늘푸른연극제' 기자간담회에서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마이크를 잡고 '국립정동극장_세실'의 공연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힘차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1980년 미국 뉴욕대에서 연극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교수와 동랑레퍼터리극단 대표를 거쳐 1993∼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대 원장을 지낸 그는 한국 연극의 산 증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원로 연극인이다. 원로 연극인들의 연극 축제인 '늘푸른연극제'의 일환으로 그는 작년 10~11월 연극 '겹괴기담'을 서울 한남동 더줌아트센터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았다.

구조주의 연극의 대가인 마이클 커비의 작품인 이 연극은 실험극이 흔치 않았던 1982년에 미국에서 연극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우옥이 자신의 동랑레퍼터리 극단에서 초연해 국내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

정밀하게 꾸며놓은 두 개의 무서운 이야기가 서로 교차로 전개되는 독특한 구성의 이 작품은 마치 틀린 그림 찾기나 퍼즐 맞추기처럼 관객들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관극 체험을 선사한다. 김우옥이 다시 연출해 무대에 올린 '겹괴기담'은 작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는 등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1982년에 이 작품을 올렸을 때 많은 관객이 굉장히 당혹스러워했어요.

이 작품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 무척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는데 2000년에 (한예종) 정년퇴임 기념으로 다시 학생들을 데리고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지요. 그때 '아, 우리나라도 문화적으로 많이 바뀌었구나'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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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에 다시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겹괴기담'을 무대에 올리면서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는 그는 "젊은이들이 열광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겹괴기담은) 젊은이들이 보고 어렵고 힘들어한 작품이었는데, 젊은이들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어서 이런 작품들을 보고 즐기는 인구가 많아졌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우리 나이로 올해 아흔이 됐어요.

얼마 전 방문한 한 관광지 매표원이 신분증 출생연도를 보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이 나이에 연출도 하게 된 건) 늘푸른연극제 덕택이지요.

무척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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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괴기담'으로 작년 막을 올린 늘푸른연극제는 7회를 맞아 '새로움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이달부터 내달까지 선정작 3편을 잇달아 무대에 올리며 본격적으로 연극 팬들을 만난다.

오는 13~20일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하는 '겨울 배롱나무꽃 피는 날'에는 원로배우 박승태 등이 출연해 삶과 죽음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이강백의 '영월행일기'가 이달 28일부터 내달 5일까지 같은 무대에 오른다.

고문서 검증을 위해 모인 고서적 연구회 회원들과 500년 전 영월에 유배 갔던 단종의 이야기를 오가며 사실과 허구,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 작품은 제15회 서울연극제 희곡상, 제4회 대산문학상 등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마지막으로 2월 8~12일 공연하는 '꽃을 받아줘'는 원로배우 정현(78)이 연출하고 출연하는 그의 대표작으로, 요양원에서 펼쳐지는 노년의 사랑 이야기다.

정현은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열정이 타오르던 순간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뜨겁게 타오른다는 건 좀…내가 타봤자지"라면서도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최선을 다해서 늘푸른연극제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