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걱정 없이 스키탈 수 있을까"…우크라 설경 속 고뇌

러 침공 속 달라진 스키장 풍경…NYT "평범한 삶 회복 추구"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와 전쟁 중에도 스키를 즐기고 있지만, 전쟁에 대한 고뇌는 마음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서부 카르파티아 산맥의 부코벨 스키 리조트에서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으로 포위된 삶의 스트레스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꿈꾸며 스키를 타고 있었다.

또 일부는 러시아의 공습 속에 불안정한 전력 시스템 속에서 그나마 안정적으로 전기가 공급되는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야나 체르네츠카(30)는 전쟁 속에서도 스키를 타는 행위는 저항에 가까운 것이라면서 "평범한 삶을 되찾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네 살배기 딸과 남편과 함께 남부 오데사에서 이곳에 왔다. 그러면서 "미사일이 내 아이의 평범한 유년기를 억누르게 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전쟁터가 결코 마음에서 멀리 떠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전 참전용사인 타라스 비후스(29)는 "이곳은 낙원 같다. 산에 올라가면 구름이 바로 눈앞에서 흘러간다"면서도 전선에서 보냈던 5개월을 묘사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는 전쟁터에 뛰어들기 전에는 자신이 준비돼 있다고 느낄 수 있어도 막상 도착해 보면 "그곳의 현실은 매우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코벨에서 스노보드 강사 일을 하다가 자원병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과거 스노보드를 타던 시절 당한 부상이 갑자기 재발하면서 전역해 재활 치료 끝에 다시 스노보드 강사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을 영웅시하는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불편하다는 그는 올봄에 러시아 대공세가 현실화하면 예비역인 자신도 다시 참전할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전쟁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중순 부코벨을 찾은 많은 사람은 여전한 전란 속에서 휴양지에 머무는 데 대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데사에서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우크라이나 정교 명절을 보내기 위해 온 카테리나 볼로시나(31)는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틀 전 드니프로 시의 주거 단지에 대한 러시아 공습으로 수십 명이 사망한 것 때문에 이곳 휴양지를 방문한 것이 편하지만은 않다고 볼로시나는 말했다.

그는 전쟁 전인 2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면서 "모두가 행복하고 사람들은 와인을 마셨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여러 사람이 피란민으로 나라를 떠났다"고 말했다.

스키 용품점 주인인 아르템 미틴(35)도 전쟁 전후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바뀌었다면서 동유럽 사람들이나 대규모 단체가 더는 방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방문객도 많지만 단지 스키 때문이 아니라 전쟁을 잊기 위해 온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쌍둥이 아들들과 스노보드를 즐기고 있던 군인 부부는 짧은 휴가 동안 긴장을 덜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들은 산을 떠나는 것이 내키지 않을 것이라면서 가족이 다시 함께 모일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곳 카르파티아 산악지대는 전쟁 초기 많은 우크라인이 전선 지역에서 피란 왔다.

지난해 가을부터 러시아가 전국적으로 에너지 망을 때리는 공습을 가한 뒤로는 안정적 전기 공급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전국적으로 순환단전이 실시된 가운데 스키 리조트는 강력한 제설용 발전기 등을 이용해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부코벨의 한 호텔에는 수십 명의 젊은 창업가들과 IT 전문가들이 날마다 공용 일터가 된 레스토랑에 모여 일을 하고 있다.

이곳 식당은 발전기로 전기가 공급되고 단전에도 백업용 위성 인터넷이 연결되기 때문에 온라인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수 주째 일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인 레라 디아추크(23)는 "이곳은 안정의 섬 같은 곳"이라면서 "우린 우리의 삶을 살고 최선을 다해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