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AI 규범' 신경전…美 "우리가 주도"·中 "유엔에 역할"

헤이그 국제회의서…美 "우리 선언, 국제협력 초점"·中 "다자주의 고수
미국과 중국이 16일(현지시간) 군사용 인공지능(AI)에 관한 규범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에서 규범 형성의 주도권 문제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미국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군사적 영역에서의 책임 있는 인공지능에 관한 장관급 회의'(REAIM 2023) 이틀째인 이날 자국이 주도하는 군사용 AI 규범의 골격인 'AI와 자율성의 책임 있는 군사적 사용에 대한 정치적 선언'을 발표했다.

보니 젠킨스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고위급 세션에서 "우리의 선언이 국제 협력의 초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도 게재된 미국의 선언문은 같은 날 60여개국이 서명해 'REAIM 2023'에서 공개된 '공동 행동 촉구서'(call to action)와는 별도다. 두 문서 모두 '군사적 AI의 책임있는 사용'이라는 큰 틀은 같다.

하지만 '공동 행동 촉구서'가 주요 의제에 대한 공통 인식을 확인하고 다자간 협력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면, 미국의 선언문은 "핵무기와 관련한 주권적 결정을 실행하는 데 필수적인 조치에 인간의 통제와 개입을 유지해야 한다"와 같이 보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열됐다.

젠킨스 차관은 미국의 선언문에 대해 "지금은 미국 문서지만 많은 책임 있는 국가가 가진 공통된 가치를 반영한다"며 "이미 많은 국가에 이 계획에 대해 말했으며, 지금까지 받은 지지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몇 주 동안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과 협력해 강력한 국제 규범을 강화하는 실행 계획을 논의하길 희망한다"며 동참을 촉구했다.

젠킨스 차관은 전날 회의에서도 "미국은 군사용 AI의 규범 또는 책임 있는 행동을 둘러싼 국제적 합의를 만드는 데 진전을 이루고자 한다"며 "미국은 이런 공통된 규범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비전을 제시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날 고위급 세션에서는 일본, 노르웨이, 불가리아 등이 미국의 선언문에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이 이처럼 군사용 AI에 대한 규범 성안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내보인 반면 중국은 유엔의 역할을 강조했다.
고위급 세션에서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탄지엔 주네덜란드 중국대사는 "다자주의를 고수해야 한다"며 "AI 문제의 정치화에 반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 대사는 "각국은 AI 글로벌 거버넌스의 주요 채널로서 유엔에 전적인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며 "개발도상국의 대표성과 목소리를 향상하고 상호 이해와 조정을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하진 않았지만, '군사용 AI'에 대한 국제 논의가 특정 국가가 아닌 유엔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을 견제한 것으로 해석됐다.

탄 대사는 또 "AI를 통해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와 패권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한다"면서 "AI의 군사적 적용이 전략적 오산을 심화하거나 글로벌 전략적 균형과 안정성을 손상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REAIM 2023'은 AI의 책임있는 군사적 사용이라는 주제를 다룬 첫 국제회의로 지난해 11월 한-네덜란드 정상 합의에 따라 양국 정부가 공동 주최했으며 2차 회의는 내년 한국에서 열릴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