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쌓이고 원자잿값 뛰고…경기침체·인플레에 기업들 '비명'

수요위축에 재고 '눈덩이'…삼성전자 1년새 10조 증가
공급망 위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원가 부담에 휘청
원자재 가격은 치솟는데 창고에 쌓인 재고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데다 세계 경기 침체에 소비가 얼어붙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양면 압박에 시달리는 국내 주요 기업들이 아우성 치고 있다.

◇ 경기침체에 닫힌 지갑…주요 기업 재고자산 급증
26일 주요 기업들이 최근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수요 부진 속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전자 재고자산은 1년 새 10조원 넘게 급증했다.

삼성전자의 작년 말 기준 재고 자산은 52조1천878억원으로 2021년 말(41조3천844억원)보다 20.7% 증가했다.

재고 자산은 보통 상품·반제품·원재료 등으로 나뉘는데 완성품에 해당하는 제품 및 상품 재고가 16조322억원으로 1년 전(12조2천805억원)보다 2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반제품 및 재공품(제조과정 중에 있는 제품)은 13조4천736억원에서 20조775억원으로 32.8% 급증했다.

이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TV와 스마트폰, 가전제품 소비가 줄고, 삼성전자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급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재고량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의 공급초과율은 112.5%를 기록했다.

공급초과율은 시장 수요 대비 공급량을 백분위로 나타낸 것으로, 숫자가 100%를 넘길수록 공급이 넘쳐난다는 의미다.

공급초과율이 110%를 넘는 것은 이례적 상황이다.

2008년 글로벌 D램 제조업체들이 물량을 쏟아내며 출혈 경쟁을 벌였던 '치킨 게임' 당시 공급 초과율이 115% 수준이었다.

전자 부품 회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LG이노텍의 지난해 말 기준 재고자산은 1조9천787억원으로 1년 전(1조3천920억원)보다 41.2%나 증가했다.

LG이노텍 역시 제품 및 상품 재고자산이 8천3억원에서 1조2천324억원으로 54.0% 급증했다.

삼성SDI의 재고자산도 같은 기간 2조4873억원에서 3조2천45억원으로 22.4% 증가했다.

다만 삼성SDI의 재고자산을 유형별로 보면 제품은 줄고, 반제품과 원부재료가 크게 늘었는데, 이는 공급망 차질에 대비해 원자재를 비축해두려는 수요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삼성전자 작년 원재료 구매비 110조 훌쩍 넘겨…부담 가중
제품은 팔리지 않는데 원자재 가격은 오르면서 기업들의 부담은 커졌다.

삼성전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원재료 등의 사용액 및 상품 매입액은 112조5천919억원으로 전년(95조6천254억원)보다 15.0%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삼성전자 원재료 구매 비용은 70조∼80조원 안팎이었는데 2021년 처음 90조원을 넘은 데 이어 110조원을 훌쩍 넘긴 것이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부담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LG이노텍의 지난해 원재료 투입 및 상품 매입 비용은 전년(10조6천515억원)보다 38.7% 급증한 14조7천777억원으로 집계됐다.

삼성SDI의 경우 지난해 원재료 사용액은 17조443억원으로 전년(11조5천548억원)보다 47.5% 증가했다.

역시 전쟁 영향으로 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축적된 재고와 원재료 가격 상승이 실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실질 소득은 줄어 소비자들이 제품 가격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원재료 가격이 오르더라도 이를 판매가격에 즉각 반영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고가 장기간 유지되면 현금 흐름이 정체되고 신제품 출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