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열대우림속 서울 4배 크기 신수도…인도네시아 누산타라를 가다

땅 다지고 부지 곳곳에 타워크레인…40조원 인프라 개발 수요
'스마트 포레스트 시티' 목표…"한국이 스마트도시 만들어달라"
원희룡 이끄는 수주지원단 부지 방문…외국 장관으론 최초
30∼40m 높이로 쭉쭉 뻗은 유칼립투스나무 숲 사이로 내려가니 인도네시아 신수도 개발 원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곳곳에서 중장비들이 도로와 건물을 놓기 위한 땅을 다지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울창한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의 한가운데다.

지난 18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끄는 수주지원단 '원팀코리아'와 함께 인도네시아 신수도 부지인 누산타라(Nusantara)로 향했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예정지를 외국의 장관급 인사가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한국이 스마트시티 구현 지원해달라"
신수도는 현재 수도 자카르타에서 1천200km 떨어진 다른 섬인 칼리만탄섬(보르네오섬) 동부에 지어진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발릭파판에서 차를 타고 다시 2시간가량 들어가니 흙먼지가 날리는 진입도로가 나왔다.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비포장도로를 다시 30여 분 달려야 대통령궁 공사 현장에 닿을 수 있었다.

신수도의 콘셉트는 '스마트 포레스트 시티(Smart Forest City)'다. 인도네시아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스마트' 분야를 맡아주길 기대하고 있다.

신수도 부지를 안내한 인도네시아 공공사업주택부의 디아나 쿠수마스투티 주거총국장은 "신수도 완성을 위해서는 스마트 빌딩, 스마트 도시를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한국과 협력해 첨단 기술을 접목하고, 협력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우리 정부에 스마트시티 전문가 파견을 이른 시일 내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삼성물산, 현대차, LG CNS 등 우리 기업들은 인도네시아 정부·기업과 스마트시티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원희룡 장관은 "신수도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을 약속한다"고 화답했다.
◇ 세종시의 5.5배…40조원대 신수도 프로젝트
신수도 총면적은 2천561㎢.
1천만 도시 자카르타(662㎢)의 3.9배, 서울(605㎢)의 4.2배다.

세종시(465㎢)보다는 5.5배 크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세종시를 건설한 우리 경험을 높이 사고 있다.

신수도 기획부터 토지 획득, 재원 조달, 사업 이행 전 과정을 참고했다.

그러나 누산타라는 정부 기능을 분산시킨 세종시, 말레이시아의 푸트라자야보다 낙후 지역 개발을 위해 수도 자체를 옮긴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모델에 가깝다.

세계 최대 섬나라인 인도네시아 경제의 60%는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에, 20%는 수마트라섬에 집중돼 있다.

칼리만탄섬은 크게 낙후돼 있다.

바수키 하디물로노 인도네시아 공공주택사업부 장관은 "자카르타의 가장 큰 문제는 지반 침하로 인한 홍수와 교통 혼잡"이라며 "누산타라는 국토 어디에서나 (비행기로) 2시간 이내에 닿는 중앙에 있어 동서 균형개발에 용이하다"고 말했다.

수도 이전은 총사업비가 40조원대로 예상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정부핵심구역(6천671㏊), 수도구역(5만6천180㏊), 수도확장구역(19만9천962㏊)으로 나눠 2045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광활한 부지 개발은 아직 초기 단계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2019년 신수도 계획을 선포한 지 얼마 안 돼 코로나19가 닥쳤고, 예상보다 진척이 느려졌다.

전망대에 올라서 신수도에서 가장 중요한 정부핵심구역 부지를 둘러보니, 대통령궁 부지는 흙을 다진 뒤 타워크레인을 설치해둔 상태였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밝힌 대통령궁 공정률은 6.7%다.

동행한 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타워크레인을 곳곳에 설치했다는 건 공사가 확실히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과연 진행이 제대로 될지 궁금했는데, 현장에 와보니 더 적극적으로 진출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신수도 핵심지역 정수장, 수자원공사가 짓는다
신수도에 '선발대'로 진출한 건 한국수자원공사다.

정수장 건설을 맡게 된다.

정부핵심구역에 15만∼2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이며, 총사업비는 285억원 규모다.

민휴 수자원공사 인도네시아사업단장은 "2개의 정수장 중 나머지 하나는 인도네시아 기업이 짓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국 기술을 그대로 적용한 '쌍둥이 정수장'을 원하고 있다"면서 "이번 정수장 건설이 인프라 후속 사업 진출을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누산타라 수도확장구역에서는 향후 인프라 민간합작투자(PPP) 개발이 추진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속도전을 예고했다.

내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에 맞춰 대통령궁을 완공하고 수도 이전의 첫발을 떼는 게 목표다.

조코위 대통령이 대통령궁 부지 인근에서 1박 2일 야영을 하며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 임기는 내년 11월까지다.

대통령궁과 정부 부처 건물은 본래의 구릉 지형을 살려서 짓는다.

디아나 국장은 "공사가 어렵지만, 이런 지형을 잠재적인 기회로 삼으려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궁에서 내려다보면 넓게 정원이 펼쳐지고 양옆으로 행정관청, 박물관 등이 늘어서게 된다.

대통령궁 뒤쪽으로는 인도네시아 국조인 신화 속의 새 '가루다' 모양의 구조물을 병풍처럼 만들어 세운다.
◇ 원희룡 "당장 돈 벌겠다는 접근법으론 안 된다"
현지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정부 인사들은 여러 차례 '친환경' 수도 건설을 강조했다.

신수도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친환경 콘셉트라고 내세울 정도다.

건물이 올라가는 지점만 벌채하고, 물 자원이 있는 곳에는 건물을 세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신수도 인프라 건설을 총괄하는 다니스 수마딜라가 공공사업주택부 국장은 "누산타라가 인도네시아 최고의 중심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며 "특히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중점을 두고 현지 주민과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친환경·스마트도시라는 최신 트렌드를 적용한 신수도 비전을 인도네시아 정치 일정(대선)에 맞춰 단기간에 보여주는 건 만만찮은 과제다.

신도시 부지를 둘러본 원희룡 장관도 "굉장히 큰 그림을 갖고 세운 계획이고, 저탄소·스마트 도시라는 앞서가는 목표를 갖고 있기에 어려움과 도전 과제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당장의 손해와 이익을 떠나 '미래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함께 간다'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 장관은 "신수도 공사를 따서 돈을 벌겠다는 접근 방법보다는 인도네시아와 함께 고민하고 인프라 투자, 기술 지원, 기업 진출 등을 진행해야 한다"면서 "장기적 목표와 함께,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는 가족애를 갖고 접근해야 한국의 역할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