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中·美 양쪽에 불안"…군비경쟁 달구는 인도·태평양
입력
수정
대만해협 긴장에 대만·일본·인도·말레이·필리핀도 군사증강
"우크라戰으로 美 여력에 의구심"…방어력 추구에 긴장고조 악순환 세계 양강 구도를 형성한 'G2'(주요 2개국)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으로 대립각이 가팔라지자 불안감을 느낀 아시아 주변 국가들이 앞다퉈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반도에서 남중국해,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인도·태평양 권역 전체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의 군비 경쟁을 벌이며 역내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오랜 갈등과 당장의 위협이 겹치며 아시아와 태평양이 불안감 속에 무장을 갖추고 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핵 위협과 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어오고 있는 북한은 지난 13일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이라는 새 무기체계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같은 날 호주는 미국 및 영국과 함께하는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 계획에 따라 세계 7번째로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수십년간 평화주의 헌법에 묶여 있던 일본도 최근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을 수백발 구매하겠다고 밝히는 등 공격력을 키우고 있고, 미국은 대만을 중국이 쉽사리 침공하지 못할 '고슴도치'로 만들기 위해 무기 제공을 늘리고 있다.
인도는 지난 1월 처음으로 일본 및 베트남과 전투기 연합훈련을 시행했고, 말레이시아는 한국산 전투기를 구매하고 나섰으며, 필리핀은 수십 년 만에 자국에 미군기지 4곳을 추가로 허용한 후 양국간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에 돌입했다.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00년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전세계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5%에 불과했지만, 2021년(북한 제외)에는 27.7%로 급등했다.
NYT는 대만을 통제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달성하려는 중국의 군사력 전개가 이같은 현상을 촉발한 최대 원인으로 짚었다. 중국은 지난 1년간 대만해협 주변에 기록적인 규모의 군용기를 배치하며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긴장감을 끌어올렸고, 작년 8월엔 사상 최초로 일본이 설정한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미사일을 떨어뜨려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군과 인도군 수백명이 국경 지대에서 부딪히며 2020년 '몽둥이 충돌' 이후 최대 규모의 난투극을 벌였고, 올 2월에는 필리핀 해역에서 군용 물자 보급작업을 진행하던 자국 선박에 중국 함정이 레이저를 쏴 필리핀 선원들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미·중 관계가 급속히 악화한 것이 아시아 국가들의 긴장감을 부추기고 있다.
NYT는 "시진핑은 역내 '규칙 제정자' 자리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남중국해 접근을 제한하고, 대만을 중국의 통제하에 두는 목표를 명확히 했다"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의 이웃 국가들과 미국이 '하드파워'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NYT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것도 군비경쟁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작년 2월부터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끊임없이 천문학적 액수의 지원을 쏟아부은 탓에 정치적·군사적 여력이 줄어든 데다, 실제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을 공격해 올 경우 미국이 혹여 과민반응하거나 퇴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군사력은 최근 수년간 급격히 성장했다.
SIPRI 자료를 보면 중국 연간 국방지출은 2000년 220억달러(약 28조원)에서 최근 3천억달러(약 390조원) 수준으로 치솟았고, 미 해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중국이 보유한 전함이 총 360대로 미국 297대를 앞지르는 등 이미 해군력 부문에서는 추월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핵무기 보유량도 2030년 1천기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핵전력에서도 점차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미사일 전력이 일본과 괌에 위치한 미군기지를 타격할 가능성을 고려, 군사시설을 분산 배치하고자 최근 필리핀·일본·호주·팔라우·파푸아뉴기니 등과 논의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배치 자체가 군사력 운용을 까다롭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많은 나라들은 미군과 협력할 경우 중국의 군사·경제적 보복을 당할 수 있다며 미국에 무역과 군사훈련을 대가로 요구하는데, 이런 사안은 미 의회에서 쉬이 해결될 수 없다고 NYT는 꼬집었다.
결국 인·태 지역의 많은 국가가 자체 방어력 강화를 추구하게 되고, 이는 다시 인접국의 반발과 긴장 고조를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미 군비증강을 놓고 북한·중국·러시아가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있고, 한국조차 과거 식민 지배 역사로 인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NYT는 짚었다.
또 호주가 핵잠수함 보유를 위해 추진한 오커스 계획은 인도네시아를 자극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도록 만들었다고도 지적했다. NYT는 "지난 수십년간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부상하며 중국 등 제조업 허브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연결되는 등 초점이 무역에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경쟁으로 외교관계가 50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으며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
"우크라戰으로 美 여력에 의구심"…방어력 추구에 긴장고조 악순환 세계 양강 구도를 형성한 'G2'(주요 2개국)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으로 대립각이 가팔라지자 불안감을 느낀 아시아 주변 국가들이 앞다퉈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반도에서 남중국해,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인도·태평양 권역 전체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의 군비 경쟁을 벌이며 역내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오랜 갈등과 당장의 위협이 겹치며 아시아와 태평양이 불안감 속에 무장을 갖추고 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핵 위협과 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어오고 있는 북한은 지난 13일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이라는 새 무기체계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같은 날 호주는 미국 및 영국과 함께하는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 계획에 따라 세계 7번째로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수십년간 평화주의 헌법에 묶여 있던 일본도 최근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을 수백발 구매하겠다고 밝히는 등 공격력을 키우고 있고, 미국은 대만을 중국이 쉽사리 침공하지 못할 '고슴도치'로 만들기 위해 무기 제공을 늘리고 있다.
인도는 지난 1월 처음으로 일본 및 베트남과 전투기 연합훈련을 시행했고, 말레이시아는 한국산 전투기를 구매하고 나섰으며, 필리핀은 수십 년 만에 자국에 미군기지 4곳을 추가로 허용한 후 양국간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에 돌입했다.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00년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전세계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5%에 불과했지만, 2021년(북한 제외)에는 27.7%로 급등했다.
NYT는 대만을 통제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달성하려는 중국의 군사력 전개가 이같은 현상을 촉발한 최대 원인으로 짚었다. 중국은 지난 1년간 대만해협 주변에 기록적인 규모의 군용기를 배치하며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긴장감을 끌어올렸고, 작년 8월엔 사상 최초로 일본이 설정한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미사일을 떨어뜨려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군과 인도군 수백명이 국경 지대에서 부딪히며 2020년 '몽둥이 충돌' 이후 최대 규모의 난투극을 벌였고, 올 2월에는 필리핀 해역에서 군용 물자 보급작업을 진행하던 자국 선박에 중국 함정이 레이저를 쏴 필리핀 선원들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미·중 관계가 급속히 악화한 것이 아시아 국가들의 긴장감을 부추기고 있다.
NYT는 "시진핑은 역내 '규칙 제정자' 자리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남중국해 접근을 제한하고, 대만을 중국의 통제하에 두는 목표를 명확히 했다"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의 이웃 국가들과 미국이 '하드파워'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NYT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것도 군비경쟁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작년 2월부터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끊임없이 천문학적 액수의 지원을 쏟아부은 탓에 정치적·군사적 여력이 줄어든 데다, 실제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을 공격해 올 경우 미국이 혹여 과민반응하거나 퇴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군사력은 최근 수년간 급격히 성장했다.
SIPRI 자료를 보면 중국 연간 국방지출은 2000년 220억달러(약 28조원)에서 최근 3천억달러(약 390조원) 수준으로 치솟았고, 미 해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중국이 보유한 전함이 총 360대로 미국 297대를 앞지르는 등 이미 해군력 부문에서는 추월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핵무기 보유량도 2030년 1천기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핵전력에서도 점차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미사일 전력이 일본과 괌에 위치한 미군기지를 타격할 가능성을 고려, 군사시설을 분산 배치하고자 최근 필리핀·일본·호주·팔라우·파푸아뉴기니 등과 논의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배치 자체가 군사력 운용을 까다롭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많은 나라들은 미군과 협력할 경우 중국의 군사·경제적 보복을 당할 수 있다며 미국에 무역과 군사훈련을 대가로 요구하는데, 이런 사안은 미 의회에서 쉬이 해결될 수 없다고 NYT는 꼬집었다.
결국 인·태 지역의 많은 국가가 자체 방어력 강화를 추구하게 되고, 이는 다시 인접국의 반발과 긴장 고조를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미 군비증강을 놓고 북한·중국·러시아가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있고, 한국조차 과거 식민 지배 역사로 인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NYT는 짚었다.
또 호주가 핵잠수함 보유를 위해 추진한 오커스 계획은 인도네시아를 자극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도록 만들었다고도 지적했다. NYT는 "지난 수십년간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부상하며 중국 등 제조업 허브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연결되는 등 초점이 무역에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경쟁으로 외교관계가 50년 만에 최악으로 치달으며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