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신혼여행 떠난 신부…남편은 어디갔을까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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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경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출간머리가 아플 만큼 밝은 멕시코 칸쿤의 햇빛, 고급스러운 리조트, 깔끔하게 정돈된 스위트 룸, 붉은 꽃을 머리칼에 꽂은 채 밝게 인사하는 리조트 직원들…. 완벽한 허니문이다. 신랑이 없다는 것만 빼면.최근 출간된 노은지 작가(사진)의 장편소설 <세노테 다이빙>은 주인공 ‘현조’가 신혼여행지에 혼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소설은 ‘2023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부문 당선작이다. 신문사의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대부분은 단편이기 때문에 지면을 통해 작품 전체가 공개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지 못했다. 장편소설이어서 줄거리만 소개됐다가 마시멜로출판사에서 마침내 책으로 나왔다.소설 속 주인공 현조는 어떤 연유로 나 홀로 신혼여행을 온 걸까. 체크인을 돕던 리조트 직원이 현조에게 예약자인 남편의 이름을 말하면서 행방을 묻는다. 현조는 답한다. “그는 죽었어요(He’s dead).”
노은지 작가의 데뷔 소설
휴양지 칸쿤에 혼자 도착한 신부
"남편은 죽었다" 답변했지만
원인에 대해서는 계속 말 바꿔
"신혼여행지에서 아이디어 얻어
5년간 다듬어 이제야 출간됐죠"
남편은 정말 죽은 걸까.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카리브해처럼 소설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계속해서 의문을 자아낸다. 궁금증에 떠밀려 독자는 소설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현조는 리조트에서, 리조트에서 벗어난 유적지 투어에서 남편 없이 신혼여행을 온 까닭을 묻는 사람들과 계속 마주친다.현조의 설명은 그때마다 바뀐다. 남편은 결혼식 1주일 전 열린 ‘총각파티’에서 시비가 붙었다가 머리를 부딪혀 죽기도 하고, 시누이를 스토킹하던 사람과 싸우던 와중에 칼에 맞아 죽거나, 단순 교통사고로 죽는다. 현조는 어떤 진실을 품고 칸쿤에 온 걸까.소설은 감각적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평화롭기만 한 휴양지의 풍경, 신비로운 마야문명 유적지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읽다 보면 후덥지근한 열대의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 서 있는 기분마저 든다. 압권은 소설 말미에 나오는 세노테 부분. 세노테는 석회암 암반이 함몰돼 지하수가 드러난 천연샘을 말한다. 현조는 우거진 숲 한가운데서 새로운 세노테를 발견하고, 점점 더 깊이 잠수한다. 그 고요한 물속에서 현조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자신의 삶을 바꿔놓을 어떤 얼굴을.
노 작가는 실제 칸쿤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 물론 남편과 함께 떠난 신혼여행이었다. 그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혼자 신혼여행을 온 여자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여러 공모전에서 고배를 마시며 노 작가는 5년간 이 작품과 씨름했다.
초고는 단편이었지만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중편으로, 다시 장편으로 고쳐 썼다. 노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이) 알맞은 깊이가 될 때까지 파는 일은 끈기를 필요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은 세상의 이면을 파고들지만, 정작 내게 있어 소설은 현실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도피처였다”며 “이제는 내 소설이 누군가에게 도피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2023 한경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던 은희경·이기호 소설가는 <세노테 다이빙>에 대해 “카리브해로 혼자 신혼여행을 떠난 현조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 소설은 장소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고 주제(폐허와 탄생)가 되는, 서사적 완결성을 지닌 작품”이라고 말했다. “우리 시대 사랑에 대한 시의적절한 질문과 함께 안정된 문장과 플롯이 일품”이라고도 했다.
소설을 지은 노 작가는 출간 이후 “초고를 쓸 때까지만 해도 이 작품이 책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그래서인지 실물로 나온 책을 쥐고도 실감이 잘 안 났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만 쓰고 읽던 소설에 독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며 “소설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