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 확보 어려운 성범죄 '미생물 분포'로 잡는다

성접촉 후 미생물 전이 현상 이용…"DNA없는 사건서 활용 가능"
2018년 5월 여아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씨는 황당한 변명을 내놨다. A씨가 성기에 침을 묻혀 몸에 문질렀다는 피해 아동의 진술이 이미 나왔고 아이의 속옷에서 A씨의 타액도 검출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A씨는 이 침이 '놀아주는 과정에서 묻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해 아동 손에 상처가 나 침을 발라줬을 뿐이고, 그 침이 아이의 손을 타고 속옷에 옮겨 묻었다는 것이다. 1심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성범죄는 통상 목격자가 없는 곳에서 이뤄지는 데다 이처럼 범죄 뒤 명백한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운 특성 탓에 정황으로만 보면 '진범'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피고인이 무죄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직·간접 증거 확보를 위한 최신 기법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법과학연구교육센터 부국장 미르나 검라위(Mirna Ghemrawi) 박사팀이 내놓은 생식기 미생물 군집 연구도 그중 하나다.

대검찰청이 10일 연 '법과학 DNA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검라위 박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생식기 미생물 조사를 활용해 성범죄 증거를 보강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검라위 박사에 따르면 사람의 생식기에 분포하는 박테리아 등 미생물 군집은 성적인 접촉이 이뤄질 때 상대 쪽으로 옮겨가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생식기에 있는 미생물 군집은 성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분포 양상이 다르다.

이를 토대로 두 사람 간 성접촉이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게 검라위 박사의 이론이다.
이 방법은 아직 연구 초기 단계라 실제 법정에서 쓰이려면 증거력 검증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성접촉시 상대방 생식기에 전이된 미생물 군집의 분포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샤워 등 외부 변수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추가 연구를 통해 이 기법이 상용화되면 DNA가 없는 성범죄 사건에서 범행을 증명할 보조적 증거로 쓰일 수 있다고 검라위 박사는 설명했다.

증거 확보가 비교적 어려운 손이나 입 등 신체 다른 부위를 이용한 성범죄를 증명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기대했다.

검라위 박사는 "성폭행은 너무 자주 일어나는 데 미국의 경우 성폭행 진단키트 중 60%가량은 남성의 DNA가 검출되지 않는다"며 "그게 동기가 돼서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연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이환영 교수 연구팀도 체액·신체조직을 통한 연령 추정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를 특정하는 작업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A씨 사건에서 대검은 DNA 정밀 감정을 통해 피해자 속옷에서 A씨의 체액 흔적을 찾고 증거로 제출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죄가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대검 관계자는 16일 "검라위 박사의 연구 결과를 활용하게 된다면 속옷에 묻은 미생물 군집의 분포를 전이 여부를 확인해 간접적으로 범행을 증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