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그린딜 청사진, 내년 6월 선거 앞두고 정치적 역풍 맞나

유럽연합(EU)이 야심차게 내놓았던 그린딜 청사진이 용두사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지형도에 따른 내분과 저항이 거세지면서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나친 규제는 기업 환경에 독"이라며 EU의 친환경 어젠다를 겨냥한 것도 이 같은 정치적 역풍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2024년 6월 치러질 유럽의회 선거로 인해 EU의 그린딜 청사진에 따른 각종 입법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주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엘리제궁에서 정·재계 인사들을 상대로 "유럽의 과도한 친환경 규제는 미·중 등 다른 국가를 압도한다"며 "유럽 산업계가 최근 통과된 대량의 규제안을 소화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후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다른 자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EU는 각 회원국들이 친환경 규제안들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유럽의 그린딜 청사진은 놀라운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EU 내부에서도 당국의 친환경 드라이브에 관한 불만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의회의 중도우파 성향 유럽인민당이 대표적 반대파다. 유럽인민당은 황폐화된 토지 재조림, 농약 사용량 감축 등의 내용이 담긴 법안에 대한 투표를 거부하고 있다. 역내 농업 종사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만프레드 웨버 유럽인민당 대표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만 우선시하느라 사회 나머지 부분들을 등한시하면 결국 넷제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탄가스 배출량 규제, 포장 폐기물 규제 등의 법안도 아직 유럽의회 표결 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친환경 건물 리모델링, 내연기관차 단계적 퇴출 등은 특히 회원국 간 이해관계 등에 따라 논란이 많은 법안들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해당 법안들이 발표되 "EU의 환경 보호 노력이 우리의 경제 구조를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FT는 EU 집행위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아직 집행위가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미세플라스틱 사용 규제 및 토질 개선에 관한 법안은 (반발 분위기를 고려해) 당분간 정책 의제 업데이트에 반영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전했다. 유럽기술산업단체 올가림(Orgalim)의 말테 로한 사무총장은 최근의 그린딜 강행 기류에 대해 "입법 제안 쓰나미"라며 "집행위가 쏟아내는 제안들은 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