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 희생된 美 텍사스 초교 총기 난사 1년…아물지 않는 상처
입력
수정
생존 학생 부모들 "아이들 트라우마 시달려…당시 영상 공개해야"
총기 규제 입법은 난항…일부 주민들 "이제 그만" 피해자 외면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21명이 희생된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됐다. 하지만 희생자 유족들을 비롯해 생존 학생들과 그 가족들은 끔찍했던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21일(현지시간) 잇달아 보도했다.
지난해 5월 24일 텍사스주 남부 소도시 유밸디에 있는 롭 초등학교에서는 당시 18세였던 샐버도어 라모스가 교내로 들어와 총기를 난사해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당시 수백명의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초동 대응에 실패하고 시간을 끌다 피해를 키웠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피해자 가족들은 더 큰 슬픔과 분노에 빠지게 됐다. ◇ 피해 학생 부모들 "아이들 트라우마 여전…현장 영상 보여달라"
미 CNN 방송은 이 사건 생존 학생들의 부모들이 당시 현장이 담긴 영상을 보여달라고 요청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일부 영상을 공유했다고 이날 밝혔다.
생존 학생 미아 서릴로의 아버지 미구엘 서릴로는 "우리 딸이 그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지 알고 싶다"며 현장 영상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CNN은 현장 경찰관의 몸에 부착된 보디캠과 학교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 중 독점적으로 입수한 일부 영상을 이 부모들에게 보여줬다고 전했다. 피해 학생들의 부모들은 그동안 경찰과 사법 당국에 현장 영상을 확인하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유밸디 지방검사 크리스티나 미첼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다 끝날 때까지 공개할 수 없다며 관련된 모든 자료에 접근을 봉쇄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여전히 크다며 당시 경찰의 대응에 너무 많은 의문점이 계속 남아 있다고 말한다.
당일 오전 11시 33분 총격범 라모스는 열려 있던 학교 뒷문을 통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간 뒤 나란히 붙어 있는 2개 교실에서 모두 100발 넘게 총을 난사했다. 학생들의 신고로 경찰관들이 속속 출동하면서 학교에 모인 경찰 인원이 376명으로 불어났지만, 이들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최초 신고 시점으로부터 1시간 17분가량이 지나서야 연방 국경순찰대 전술팀이 교실에 진입해 총격범을 사살했다.
학생들은 경찰의 구조를 기다린 77분간 끔찍한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부모들은 호소하고 있다.
한 학생의 부모는 당시 현장 영상에서 자기 딸이 총격범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죽은 친구의 피를 몸에 바른 채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는 영상 재생을 중단시켰다고 CNN은 전했다.
한 생존 학생은 항상 귀에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데, 그 이유를 묻자 "듣기 싫은 소리가 자꾸 들릴 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총기 규제 입법은 요원…당국·일부 주민들은 피해자 목소리 외면
지난해 사건 직후 텍사스주 경찰과 교육 당국은 현장 대응에 실패한 책임을 인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 현장 지휘관이었던 주정부 소속 경찰관 1명이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면직됐으며, 다른 감찰 대상이었던 경찰관 1명은 사표를 낸 뒤 유밸디 교육청 소속 경찰관으로 재취업했다가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면직됐다. 피해자 가족들은 반자동 소총을 구매할 수 있는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상향하는 입법을 촉구하며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주의회를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유밸디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민주당 소속 텍사스주 상원의원 롤런드 구티에레스는 지난 18일 주의회 연설에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 아이들을 본다"며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주의회는 해당 법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고 회기를 끝내버렸고, 유밸디 피해자 가족은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소음 한도 초과를 이유로 쫓겨나기도 했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피해자 유가족들의 분투가 1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지역 일각에서는 이들을 백안시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은 "우리는 '비난 게임'에 질렸다", "그만해라. 당신들은 우리 동네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팻말을 들고 피해자 유가족들 앞에서 맞불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지역 치안 판사 율라리오 디아즈는 지역 여론이 지난해 10월 담당 교육감의 사퇴 이후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기 시작하자 이 가족들에 대한 지지와 애정이 끊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밸디 시장과 카운티 판사, 보안관, 경찰서장, 지방검사 등 지역 고위 공무원들은 사건 1주기를 앞두고 지역 사회가 조용히 애도할 수 있도록 외부인들의 접근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하기도 했다.
한편, 현지 교육 당국은 지난 18일 사건 이후 처음으로 부모들에게 학교 방문을 허용했다고 ABC방송이 전했다. 지난해 사건 이후 학교는 완전히 폐쇄됐으며, 교육 당국은 인근에 새 초등학교를 지을 계획이다. /연합뉴스
총기 규제 입법은 난항…일부 주민들 "이제 그만" 피해자 외면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21명이 희생된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됐다. 하지만 희생자 유족들을 비롯해 생존 학생들과 그 가족들은 끔찍했던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21일(현지시간) 잇달아 보도했다.
지난해 5월 24일 텍사스주 남부 소도시 유밸디에 있는 롭 초등학교에서는 당시 18세였던 샐버도어 라모스가 교내로 들어와 총기를 난사해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당시 수백명의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초동 대응에 실패하고 시간을 끌다 피해를 키웠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피해자 가족들은 더 큰 슬픔과 분노에 빠지게 됐다. ◇ 피해 학생 부모들 "아이들 트라우마 여전…현장 영상 보여달라"
미 CNN 방송은 이 사건 생존 학생들의 부모들이 당시 현장이 담긴 영상을 보여달라고 요청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일부 영상을 공유했다고 이날 밝혔다.
생존 학생 미아 서릴로의 아버지 미구엘 서릴로는 "우리 딸이 그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지 알고 싶다"며 현장 영상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CNN은 현장 경찰관의 몸에 부착된 보디캠과 학교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 중 독점적으로 입수한 일부 영상을 이 부모들에게 보여줬다고 전했다. 피해 학생들의 부모들은 그동안 경찰과 사법 당국에 현장 영상을 확인하게 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유밸디 지방검사 크리스티나 미첼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다 끝날 때까지 공개할 수 없다며 관련된 모든 자료에 접근을 봉쇄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여전히 크다며 당시 경찰의 대응에 너무 많은 의문점이 계속 남아 있다고 말한다.
당일 오전 11시 33분 총격범 라모스는 열려 있던 학교 뒷문을 통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간 뒤 나란히 붙어 있는 2개 교실에서 모두 100발 넘게 총을 난사했다. 학생들의 신고로 경찰관들이 속속 출동하면서 학교에 모인 경찰 인원이 376명으로 불어났지만, 이들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최초 신고 시점으로부터 1시간 17분가량이 지나서야 연방 국경순찰대 전술팀이 교실에 진입해 총격범을 사살했다.
학생들은 경찰의 구조를 기다린 77분간 끔찍한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부모들은 호소하고 있다.
한 학생의 부모는 당시 현장 영상에서 자기 딸이 총격범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죽은 친구의 피를 몸에 바른 채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는 영상 재생을 중단시켰다고 CNN은 전했다.
한 생존 학생은 항상 귀에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데, 그 이유를 묻자 "듣기 싫은 소리가 자꾸 들릴 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총기 규제 입법은 요원…당국·일부 주민들은 피해자 목소리 외면
지난해 사건 직후 텍사스주 경찰과 교육 당국은 현장 대응에 실패한 책임을 인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 현장 지휘관이었던 주정부 소속 경찰관 1명이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면직됐으며, 다른 감찰 대상이었던 경찰관 1명은 사표를 낸 뒤 유밸디 교육청 소속 경찰관으로 재취업했다가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면직됐다. 피해자 가족들은 반자동 소총을 구매할 수 있는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상향하는 입법을 촉구하며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주의회를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유밸디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민주당 소속 텍사스주 상원의원 롤런드 구티에레스는 지난 18일 주의회 연설에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 아이들을 본다"며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주의회는 해당 법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고 회기를 끝내버렸고, 유밸디 피해자 가족은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소음 한도 초과를 이유로 쫓겨나기도 했다.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피해자 유가족들의 분투가 1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지역 일각에서는 이들을 백안시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은 "우리는 '비난 게임'에 질렸다", "그만해라. 당신들은 우리 동네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팻말을 들고 피해자 유가족들 앞에서 맞불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지역 치안 판사 율라리오 디아즈는 지역 여론이 지난해 10월 담당 교육감의 사퇴 이후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기 시작하자 이 가족들에 대한 지지와 애정이 끊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밸디 시장과 카운티 판사, 보안관, 경찰서장, 지방검사 등 지역 고위 공무원들은 사건 1주기를 앞두고 지역 사회가 조용히 애도할 수 있도록 외부인들의 접근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하기도 했다.
한편, 현지 교육 당국은 지난 18일 사건 이후 처음으로 부모들에게 학교 방문을 허용했다고 ABC방송이 전했다. 지난해 사건 이후 학교는 완전히 폐쇄됐으며, 교육 당국은 인근에 새 초등학교를 지을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