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니체티 '여왕 3부작'의 모험…'로베르토 데브뢰' 국내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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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오페라단, '안나 볼레나'·'마리아 스투아르다' 이어 8년만에 완결 라벨라오페라단이 19세기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여왕 3부작'을 완결했다. 라벨라오페라단은 지난 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2015년 '안나 볼레나', 2019년 '마리아 스투아르다'에 이어 여왕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로베르토 데브뢰'의 역사적인 초연 무대를 올렸다.
라벨라오페라단은 테너 이강호 단장이 2007년에 창단한 민간오페라단으로 도니체티, 베르디 등 유명 작곡가의 공연 빈도가 낮은 걸작을 소개하고, 한국 오페라 창작에 공을 들이며 호평받아왔다.
여왕 3부작은 튜더 왕조의 실제 역사에 허구를 가미한 작품들로 헨리 8세와 왕비 앤 불린, 그들의 딸인 엘리자베스 여왕(극 중 엘리자베타 여왕), 여왕의 라이벌과 연인들을 등장시키는 인기작이다. 하지만 고난도 성악 기량을 요구하는 데다 오페라 레퍼토리의 국내 인지도 부족 등의 이유로 공연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내 완결된 3부작의 마지막 오페라 '로베르트 데브뢰'는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 선정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공연 첫날 티켓은 전석을 1만8천원에 판매하는 이벤트로 티켓 예매 시작 3분 만에 매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자가 관람한 27일 오후 공연은 정상 티켓 가격이었음에도 1∼3층 객석을 거의 다 채웠고, 관객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연은 전통적인 시대극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니멀리즘과 프로젝션 대응(대상물의 표면에 영상을 투사해 다른 성질의 대상으로 보이도록 하는 기술)이 대세인 최근 오페라 무대와는 정반대였다. 연출가 김숙영은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연주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화려한 대관식을 통해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은 후 스물다섯 살에 권력을 장악한 여왕의 고뇌와 '권력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이번 연출에서는 회전무대의 활용을 통해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점이 주목할 만했다.
예컨대 68세에 이른 여왕이 33세인 연인 로베르토 데브뢰를 의심하며 그에게 분노의 경고를 날리는 1막 이중창에서 연출가는 두 연인이 문을 사이에 두고 노래하게 해 관계의 균열을 암시했다.
1막부터 3막까지 무대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왕궁의 턴 테이블식 회전무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감옥 장면의 하부무대, 후면에서 전면으로 밀려 나오는 무대 등을 사용해 움직임을 유지하며 역동성을 살렸다. 로베르토 역의 테너 김효종은 맑고 호소력 있는 음색과 자유자재의 레가토로 젊음의 혈기와 인물의 깊은 고뇌를 표현했다.
고난도의 테크닉도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처리했다.
특히 3막에서 런던탑에 갇혀 부른 애절한 아리아는 관객들의 환호와 갈채를 끌어냈다.
엘리자베타 역의 소프라노 손가슬은 장면마다 달라지는 여왕의 감정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명징한 고음과 강렬한 저음으로 여왕의 분노와 절망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 손가슬은 극의 진행 내내 쌓아 올린 감정을 마지막 두 아리아에서 폭발시키며 모든 것을 잃은 노년의 여왕 그 자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로베르토의 진짜 연인인 노팅험 공작부인 사라 역의 소프라노 조정희는 엘리자베타와 대조를 이루는 따뜻하고 풍성한 음색으로 깊은 사랑과 슬픔을 나타냈고, 노팅험 공작 역의 바리톤 임희성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장 친한 친구 로베르토에게 이중으로 배신당한 충격과 고통을 유연한 가창으로 절절하게 표현했다.
조역들도 모두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다.
이탈리아의 노장 실바노 코르시가 지휘한 베하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연주자나 청중 대부분에게 생소한 이 작품을 탁월한 집중력으로 밀도 있게 연주했다.
서곡부터 정확한 템포와 극적인 박진감이 두드러졌지만, 벨칸토 가창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해 오케스트라 음량을 억제하는 부분도 많았다.
메트오페라합창단(단장 이우진)이 함께해 작품의 기품과 역동성을 더했다. 공연은 28일까지. /연합뉴스
라벨라오페라단은 테너 이강호 단장이 2007년에 창단한 민간오페라단으로 도니체티, 베르디 등 유명 작곡가의 공연 빈도가 낮은 걸작을 소개하고, 한국 오페라 창작에 공을 들이며 호평받아왔다.
여왕 3부작은 튜더 왕조의 실제 역사에 허구를 가미한 작품들로 헨리 8세와 왕비 앤 불린, 그들의 딸인 엘리자베스 여왕(극 중 엘리자베타 여왕), 여왕의 라이벌과 연인들을 등장시키는 인기작이다. 하지만 고난도 성악 기량을 요구하는 데다 오페라 레퍼토리의 국내 인지도 부족 등의 이유로 공연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내 완결된 3부작의 마지막 오페라 '로베르트 데브뢰'는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 선정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공연 첫날 티켓은 전석을 1만8천원에 판매하는 이벤트로 티켓 예매 시작 3분 만에 매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자가 관람한 27일 오후 공연은 정상 티켓 가격이었음에도 1∼3층 객석을 거의 다 채웠고, 관객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연은 전통적인 시대극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니멀리즘과 프로젝션 대응(대상물의 표면에 영상을 투사해 다른 성질의 대상으로 보이도록 하는 기술)이 대세인 최근 오페라 무대와는 정반대였다. 연출가 김숙영은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연주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화려한 대관식을 통해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은 후 스물다섯 살에 권력을 장악한 여왕의 고뇌와 '권력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이번 연출에서는 회전무대의 활용을 통해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점이 주목할 만했다.
예컨대 68세에 이른 여왕이 33세인 연인 로베르토 데브뢰를 의심하며 그에게 분노의 경고를 날리는 1막 이중창에서 연출가는 두 연인이 문을 사이에 두고 노래하게 해 관계의 균열을 암시했다.
1막부터 3막까지 무대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왕궁의 턴 테이블식 회전무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감옥 장면의 하부무대, 후면에서 전면으로 밀려 나오는 무대 등을 사용해 움직임을 유지하며 역동성을 살렸다. 로베르토 역의 테너 김효종은 맑고 호소력 있는 음색과 자유자재의 레가토로 젊음의 혈기와 인물의 깊은 고뇌를 표현했다.
고난도의 테크닉도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처리했다.
특히 3막에서 런던탑에 갇혀 부른 애절한 아리아는 관객들의 환호와 갈채를 끌어냈다.
엘리자베타 역의 소프라노 손가슬은 장면마다 달라지는 여왕의 감정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명징한 고음과 강렬한 저음으로 여왕의 분노와 절망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 손가슬은 극의 진행 내내 쌓아 올린 감정을 마지막 두 아리아에서 폭발시키며 모든 것을 잃은 노년의 여왕 그 자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로베르토의 진짜 연인인 노팅험 공작부인 사라 역의 소프라노 조정희는 엘리자베타와 대조를 이루는 따뜻하고 풍성한 음색으로 깊은 사랑과 슬픔을 나타냈고, 노팅험 공작 역의 바리톤 임희성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장 친한 친구 로베르토에게 이중으로 배신당한 충격과 고통을 유연한 가창으로 절절하게 표현했다.
조역들도 모두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다.
이탈리아의 노장 실바노 코르시가 지휘한 베하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연주자나 청중 대부분에게 생소한 이 작품을 탁월한 집중력으로 밀도 있게 연주했다.
서곡부터 정확한 템포와 극적인 박진감이 두드러졌지만, 벨칸토 가창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해 오케스트라 음량을 억제하는 부분도 많았다.
메트오페라합창단(단장 이우진)이 함께해 작품의 기품과 역동성을 더했다. 공연은 28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