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에 맞서다]⑥ "이젠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산업도시 울산 안 돌아가죠"

인구 감소에 젊은층 제조업 이탈까지…울산은 '노동력 비상'
외국인 노동자들이 빈자리 채워…통역·맞춤형 식단 제공하며 '귀한 손' 대접
"영주권 확대 등 외국인 정착 쉽도록 법제도 개선해야"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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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울산 산업 전체가 안 돌아갑니다.

내국인 노동자로 충분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죠."
지난 11일 찾은 울산외국인센터.
울산 북구 호계시장 옆 낡은 건물 3층에 자리한 센터 강의실에서는 외국인 십수 명이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칠판 앞에 선 이삼성 울산외국인센터장은 신라 왕릉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에 선풍기 하나만 돌아가고 있었지만, 외국인들의 눈빛은 또렷하기만 했다.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미얀마 등 국적도 다양했다.

이들은 평일엔 인근 공단에서 일을 하다 주말이면 한국문화 수업을 듣고자 이곳을 찾는다.

바로 옆 강의실에선 한국어능력시험(TOPIC)을 준비하는 외국인들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국어·한국문화 교육부터 임금체불 상담까지 외국인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이 센터를 찾는 외국인은 한 해 3천여 명에 달한다.

이 센터장은 "제조업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그 빈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며 "센터를 방문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고 전했다.
◇ 인구 줄어드는데, 제조업 기피까지…"공장 돌리려면 외국인 노동자 필수"
우리나라는 '인구소멸'이라고 부를 정도의 급격한 인구 감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지방 이탈까지 심각해지면서 각 지역의 인구는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30년 후에는 13개 시·도의 인구가 2017년보다 500만 명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온다.

'잘나가던 산업도시' 울산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울산의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11.8% 감소해 전국에서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더구나 울산에 살던 사람마저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있다.

지난해 울산의 인구 순유출률은 -0.9%로 17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았다.

힘든 제조업을 기피하는 젊은 층이 다른 일자리를 찾아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조업 현장에 일손이 줄어들자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공장을 돌리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철판 가공업체를 17년째 운영 중인 한 중소기업 대표는 "내국인 대부분은 나이가 60∼70대"라며 "외국인 노동자 수를 더 늘릴 수밖에 없어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울산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비전문취업비자(E-9)로 울산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2018년 3천597명에서 올해 5월 말 4천127명으로 늘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빗발치면서 올해 말에는 최대 7천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 조선소에서, 車협력업체에서 '코리안 드림' 꿈꾸다
베트남인 팜 반 단(35) 씨는 10개월 전 일자리를 찾아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로 왔다.

협력업체 소속으로 선박블록 제작 현장에 투입돼 주로 용접일을 한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 퇴근이지만, 조선업 호황으로 물량이 늘어나 하루 1∼2시간은 초과근무를 한다.

주말에도 나와 용접기를 잡을 때도 있다.

한낮에 긴팔 작업복을 입고 딱딱한 작업화를 신은 채 선박블록을 오가며 용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월급을 받을 때면 웃음이 절로 난다.

초과근무까지 하면 베트남에서 받았던 월급의 세 배가 넘는 돈을 손에 쥔다.

퇴근 후 기숙사에 돌아오면 영상통화로 베트남에 있는 아내와 세 살 난 딸 얼굴을 보며 종일 쌓인 피로를 푼다.

베트남에서 5년 정도 용접일을 했기에 울산조선소 일이 낯설지는 않다.

그래도 가끔 고향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는 "일거리만 계속 있다면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와 살고 싶다"며 "한국 조선소는 장비가 좋아 안전하다는 느낌도 받는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에는 지난해 말부터 외국인 노동자가 740여 명 들어왔다.

올해 말까지 600명 정도 더 들어올 예정이다.
한국에 일하러 왔다가 아예 정착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스리랑카에서 온 리스미(44) 씨도 그렇다.

나이 서른에 한국에 온 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에 취직해 14년째 프레스 용접일을 하며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

무슬림인 그는 한국 문화와 음식 등에 적응하는데 크고 작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직장 동료들과 지원단체 덕분에 원만하게 정착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리스미 씨는 "이슬람 율법상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저를 위해 회사 식당에선 닭고기 반찬을 따로 마련해주고, 회식 때는 소고기를 시켜주기도 했다"며 "한국인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동안 같은 국적인 아내와 결혼해 자녀도 셋이나 뒀다.

2년 전에는 은행 대출 3천만원을 받아 울산 근교에 집도 하나 마련했다.

리스미 씨 꿈은 영주권을 얻는 것이다.

그는 "귀화 시험도 준비 중인데, 수입 규모 등 조건이 까다롭다"며 "법이 바뀌어 장기체류 외국인들이 비교적 쉽게 한국에 정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맞춤형 식단에 고민 상담까지…"사내 통역직원만 22명"
외국인 일손이 귀해지다 보니 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조기 귀국하지 않고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원하청 전체 노동자 2만7천여 명 중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10%에 육박하는 HD현대중공업은 아예 전담 부서까지 만들어 정착을 돕고 있다.

그 핵심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생활 민원을 도와주는 통역 직원들이 있다.

통역 직원 22명이 태국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등 각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현장 업무 소통부터 고민 상담까지 밀착 지원한다.

지난해 10월부터 태국어 통역을 맡아온 정현우 대리는 "많게는 하루 20통 이상 전화로 통역하거나 상담한다"며 "주말에도 휴대전화에 불이 난다"고 전했다.
주말에 오는 전화는 주로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횟집에 갔는데, 얼마나 주문해야 하는지 물어온 적도 있다.

병원과 관련한 전화도 자주 온다.

정 대리는 "한 번은 태국인 노동자 1명이 턱에서 고름과 진물이 난다길래 같이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본국에서도 몰랐던 피부암 초기 진단이 나왔다"며 "그 직원이 너무 놀라서, 최대한 안정시키고 수술받게 한 일도 있다"고 회상했다.

기숙사와 사내 식당에선 한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을 위해 맞춤형 식단을 제공한다.

글로벌 코너를 운영해 각 나라 대표 음식을 내놓고, 종교적 신념 등으로 특정 식재료를 먹지 못하는 직원들을 위해 간편식도 준비한다.

외국인 노동자에겐 월급과 별도로 초기 3개월간 정착지원금도 지원한다.

외국인 전용 기숙사도 현재 3개 동에서 더 늘릴 계획이다.
◇ 지자체도 지원 나서…"외국인 정착 쉽도록 법제도 개선해야"
외국인 노동자 지원에는 관할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는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상담, 지역탐방 등의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동구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면서 월급을 받고 지방소득세도 낸다"며 "기존 주민과 갈등을 피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유치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울산시도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하고 포용할 방안을 연구하는 용역을 맡긴 상태다.

산업현장에 부족한 생산인력을 적시에 공급할 수 있도록 외국인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유치하는 방안, 외국인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지역사회에 정착시키고 사회가 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연구한다.
외국인 노동자 증가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인 만큼, 장기체류자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삼성 울산외국인센터장은 "우리나라의 외국인 정착 정책은 결혼이민자나 이미 영주권을 획득한 사람들에 집중돼 있다"며 "한국에서 살아보려는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하려는 정책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법과 규범에 적응하고 한국 문화에 녹아든 외국인들을 선별해 이들에게는 영주권 진입 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가 영주권을 얻으려면 가계 순자산이 전체 순자산 평균 이상이어야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순자산은 4억1천452만원이다.

연봉 4천만원 외국인 노동자가 돈 한 푼 쓰지 않고 10년 이상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울산연구원 강영훈 박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이라며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정착할 의지가 있는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